주말에는 한 어른 분과 통화를 했다. 부산에 계시는 분인데 마음이 어지러울 때 마다 간간히 전화 하는게 일년에 한번씩 5-6년 된 것 같다. 최근 곤란했던 상황에 내 마음을 말하니 선생님이 웃으셨다
"맞는 소리가 맞는게 아닐 수 있다. 킴제이가 맞다 해도 그 소리를 듣는 여러명이 아니라고 하면 그게 맞는 소리 일까. 지금은 킴제이에게 구름이 걸려있다. 뭘해도 안된다고 답답하다고 느낄텐데.. 그럴 땐 아 지금 구름이 꼈구나 하고 더 낮은 자세로 가는게 좋을 수 있다."
그래 내가 맞다고 허리를 세울 필요가 있나 굳이 좁은 동굴을 가려고 하면 고개를 숙여야지.
그 동굴에서만 살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길에 어둡고 축축한 곳을 무릎으로 기어가면 어떠하리
"지혜와 덕을 배우는 시간이다. 내가 맞다고 맞는게 아니고 너가 맞다고 맞는게 아니다. 현명하게 선택하면 지금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결국 킴제이의 편이 된다. 그걸 지금 얻고 배우는 과정이다"
자존심이 구겨져서 괴롭다고 했다. 내가 자립한다고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 온전히 홀로 서지 못해 그 얇고 비루한 끄나풀을 잡고 있는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런 나를 인정하고 상대에 말을 맞춰준다는게 싶지 않다. 다음날이고 전화해서 혀끝 칼로 바람을 날리고 싶었지만 몇번이고 참았다고 했다.
"킴제이가 지금 아주 큰 사람이 되어가고 있네요. 말하는 것 생각을 들어보니 그 길로 들어섰어요"
선생님이 그리 말해주니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그래 구름이 끼고 사방 팔방이 낮은 동물인데 뭐 어쩌겠냐 천천히 마음을 낮추고 가는거다. 방황하고 뭐가 맞나 하고 마음속이 괴로운 동안 실체 하지 않는 감정들만 티슈처럼 뽑아냈다. 일종의 집착. 모든 내려놓고 한걸음 뒤에서 보면 되는데 그저 이게 맞나 저게 아닐까 이러면 어쩌지 답을 찾는 척하면서 두려움에 병이 났다. 그냥 이 모든것을 놓으면 되는거야. 눈앞에 현상들을 내가 어지럽게 보는 것 뿐 그냥 내려놓으면 내것도 아닌데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진짜.
그 뒤로는 꿈도 조금씩 편해졌다. 임신을 하고 나서는 모든 꿈이 생생하다. 이것도 호르몬인가 싶은데 또 그래서 잘 기억되서 의미를 한번 더 짚어보게 된다. 손에 놓는 연습. 하고 싶은게 많아서 단타를 친다. 해보고 답답함을 느끼면 또 옆에 잡초라도 잡아서 신나하다 보니까 에너지가 소진된다. 이렇게 배워가는게 아닐까. 이렇게 다부져지면 또 마만의 호흡법이 생기겠지?
오늘 낮에는 M (엠이라 칭하겠음)에게 전화를 했다. 일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은 최근데 내 마음이 하면서...말을 하니 속상해 했다. 아니 그랬구나 몰랐다 하며 아니 잘하고 있다. 잘한다는게 결과물을 말하는게 아니라 킴제이의 길을 잘 가고 있고 하고 있는 사람이니 잘 하고 있는거라 했다. 비루한 끄나풀을 잡고 있다고 훌쩍거렸던 내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지금 내 상황에 당황해서 내 결과물이 어쩌고 저쩌고를 말할 때가 아니다. 나는 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무엇이 되었던 해보고 있는 사람이잖아.
엠은 내게 무수한 위로를 해주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힘들었다는 말에 놀라서 그간 보았던 나의 행적과 행태들을 우다다다 쏟아냈다. 감정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려는 것도 자기는 놀랍다고 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뭐 슬퍼서 이런게 아니라 장기 속속들이 떼가 꼈던 속상함 혹은 그것을 지켜보던 위로가 울컥 목구멍을 타고 나와버려서 괜히 눈물이 났다.
너무 속상해 하지마 킴제이.
1년이 지나면 지금 아무렇지 않는 일.
찬란하고 건강한 내 인생에서 지금의 일은 되려 고마운 일. 어떻게 현명하게 마음을 정리해가냐 하고 스스로에게 던져버린 시험. 이거에 속상하다고 문들어지기엔 아까운 사람임을 알고 괴로움을 마음을 해결한답시고 가시덩쿨을 휘젓는것 보다 다 놓아버리고 멀어지는, 날아버리는 연습을 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