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온 엄마, 멜라니와의 대화
호주에서 온 멜라니는 머리를 바짝 끌어올려 깔끔하게 머리를 묶었다.
차분하고 잘 웃고 마음이 깊은 사람이다.
"킴제이가 요가를 할 때 자신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게 느껴져요. 몸과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를 따라가는 그 플로우가 정말 좋아요"
기분이 좋다. 임신했으니까 어려워 보이는 자세는 안 한다. 수딥에게도 내가 요가를 해도 되냐고 물으니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 보라고 했다. 중간중간 간단하지만 무리가 갈 수 있는 자세가 있으면 수딥이 '이건 킴제이는 하지 말고' 집어 주기도 했다. 12월까지 치열하게 앉아서 일을 했다. 화가 나서 울기도 하고 걷는 시간도 많이 없었다. 1월이 돼서 태국에 가서 수영도 하고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아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다 싶다.
네팔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몸을 느껴본다.
2층에 햇빛이 드는 곳에 앉아서 족욕을 했다. 꽃잎과 소금, 오일을 떨어뜨려주셨다. 뜨끈하니 너무 좋다.
다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손으로 비벼서 밥을 먹는다. 채식으로 건강하게 차려진 푸르나 요가센터의 밥.
"마누하가 킴제이 오는 거 맞냐고 몇 번이나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킴제이잖아. 킴제이는 말하면 와"
"마야가 킴제이 임신했으면 위험한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킴제이는 지금 일상을 사는 거라고 말했지.
마야는 출산하기 3개월 전에 뭐 했냐 물으니 일을 했다 하더라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센터 청소하고. 그것과 지금 이렇게 걸어서 요가하는 게 뭐가 다르겠어"
"사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일상에서의 몸을 움직이는 게 산모에게 가장 좋긴 해. 엎드려서 걸레질하는 게
막달에 가장 좋은 자세야"
밥을 먹으면서 식탁에 가득 채워지는 이 말들이 너무나 좋다. 라즈의 장난기 꽉 찬 눈을 보면 더 놀려주고 웃고 싶다. 서로 눈빛만 봐도 웃음이 난다. 저번에 킴제이가 와서 하루만 있다가 간다고 했는데 3일 연장, 결국 5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 센터에서 지내다가 킴제이가 혼자서 다른 동네에 1박 2일 여행하고 왔다는 이야기. 로컬 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와서는 에어팟 잃어버렸다고 혼자 또다시 돌아간 이야기. 우리의 별거 아니었던 시간들이 또롱또롱 대화를 타고 맛깔나게 흐른다.
그러네 나 혼자 네팔 와서 싱잉볼 수련도 하고 옷이랑 등산툴들을 빌려서 히말라야도 다녀왔다.
(운이 좋은 건지 네팔 떠나는 친구들이 다 자기 옷들을 내게 주고 갔다. 한인민박에서 등산 용품이랑 신발까지 다 빌려주셨었다) 그러고 4월에 뉴욕에서 제리를 만나 지내다 다시 한국 7월에 태국으로 가서 임신을 한 거다.
그러고 다시 네팔에 왔다. 대단한 나다. 지금을 살아 시간을 살면 모를 이야기들이 글로 적히면서 내 눈과 몸에 다시 보인다.
식사를 하다가 멜라니와 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점심 먹고 현금인출 하러 간다길래 같이 가자고 했다.
요가센터에서 은행을 가려면 산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이것도 너무 좋다. 저번엔 치약 사러 산에서 내려가는데 그 기쁨이란) 내가 길도 알고 주변 은행이랑 카페도 아니까. 그리고 나도 현금이 필요했다. 내려가고 돌아오는 길에 호수를 걷고 꽤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멜라니는 첫 아이를 낳고 아이가 3살이 되는 해 1주일 동안 태국으로 요가 리트릿을 떠났다고 했다
"아이랑 떨어져 있으면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나요? 전 엄마가 되면 여행을 못 할까 봐 걱정이긴 해요"
"3살 정도 되면 대화가 잘 통하니까 아이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어요. 엄마가 떠난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태국 가서 재미난 걸 배워서 올게. 같이 해보자라고 대화하는 거죠. 그럼 아이는 엄마가 돌아와서 알려주는 것들에 신나 하고"
지금은 그 딸이 커서 네팔로 의사인턴을 왔다고 했다. 자신도 여행하는 김에 네팔에 왔고 곧 딸을 만나 함께 여행할 거라고 했다. 아 진짜 좋다. 이상적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모든 직업을 구경시켜 줬다고 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손목 수술 하는 걸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인턴으로 네팔에 와는 과정, 엄마 혼자 떠나는 여행 계획,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다 저녁식사를 하며 의견을 나눈다고 했다. 엄마가 혼자 떠나게 되었을 때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면 가족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도
"죽음까지요? 그런 이야기는 가족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나요?"
"그럼 이걸 가족들과 이야기하지 누구랑 해요"
아....!!!
"멜라니! 오늘 대화 정말 고마워요. 저 멜라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킴제이는 이미 멋진 엄마예요. 자신과 아이를 위해 네팔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정말 아름다워요"
멜라니가 내 눈을 깊게 쳐다보며 말한다. 깊숙이 빠져들어 그 연결고리에 휘감긴다.
좋은 엄마가 될 것만 같다. 아 이미 나는 좋은 엄마구나.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하는 사람이니 모든 세계가 찬란할 수밖에 없다.
네팔에는 24년 1월에 다녀왔고 4월에 출산했습니다.
지금은 9월. 모든 감정들이 바늘같이 솟아올라 파도처럼 부서지는 시간들을 보냈어요.
다시 네팔에서의 시간을 글로 쓰니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행하는 사람.
그럼 모든 주변이 꽃밭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혼란을 남 탓 하지 않고 기필코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