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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Sep 21. 2024

산모라고 부르더니 왜 갑자기 어머니?


출산은 황홀했다. 건강하게 나왔으며 선생님들은 박수를 치며 상위 5프로 산모라고 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약물 없이 자연으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호르몬 샤워를 했다.

첫 모유수유. 아이가 힘차게 빨아서 놀랐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선생님께서 도와주셨는데 온몸이 쑉쑉 빨리는 것만 같았다. 기다리고 기대했던 출산의 끝. 


찬란한 엄마의 삶만이 존재할 거다.


아. 웬걸

준비할 겨를 없이 폭풍 같은 시간이다.

밤 10시 30분에 아이를 낳았고 한두 시간을 아이와 함께 있었다.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한 다음에 (키, 몸무게, 발사이즈 등 기초 검사 같다) 새벽 1시가 안돼서 바로 다시 아이를 보내주셨다. (다들 신생아실에 보낸다고 하지만 그게 싫어서 모자동실을 권장하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다시 안으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침대에서 그대로 땀범벅이 된 채로 잠들었다. 


새벽이었나. 아이 울음소리에 깼다.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어? 뭐지? 젖꼭지 끝이 발갛게 벗겨져 있다. 잉?

제리는 아이를 덩실덩실 안아 다독이고 있는데 내 몸이 이게 뭐지?


새벽 내내 제리가 아이가 울 때마다 젖을 물렸단다. 자고 있는 내 가슴을. 

그렇게 엄마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잠들었고 나는 그 뒤로 잘 수 없었다. 작은 침대에서 아기가 뒤척이면 떨어질 것 같았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내 뱃가죽 안쪽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이렇게 크게 운다고?

젖을 물릴 때마다 너무 아팠다. 새벽에 난 상처가 그리 크지 않은데 이렇게 아플 수가 있나.

점심시간에 간호사 선생님이 내 가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세를 다시 배웠다. 출산 후에 누워서 하는 것만 알아서  아이를 안아 먹이는 건 처음이었다. 후끈거리는 가슴, 온몸이 눌리는 피로, 날카롭게 긁히는 아이 울음소리.

아이가 나가고 빈 자궁은 자리를 찾아가면서 배가 아리고 거대한 생리대가 필요했다.


먹을 거 없는 아기는 똥을 싼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태변이라고 했다. 까만 똥이 초록빛 그리고 연둣빛 노란색이 되어간다. 태어난 아이가 똥을 쌀 거라고는 몰랐다. 


"엄마가 겁을 먹으면 어떻게 해"

"엄마가 결정해야죠"

"엄마가 걱정이 너무 많네. 엄마 아기잖아 엄마가 해야지"


산모님에서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다들 엄마가 선택하라고 하는데 정신이 없다.

낳았다는 이유로 바로 엄마가 되어버렸다. 작아 우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양수가 샌지 18시간 지나서 아이가 나왔기 때문에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도 엄마의 결정이라고 한다.

배양검사 수치가 이상해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엄마의 결정이라고 했다.

아이는 찔리고 줄이 주렁주렁 달린 채로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이것도 내 결정인가.... 미안해.. 아가야

아기는 이름이 없어서 입원할 때 이름이 '김정은아가'였다.

입원을 함께 하지 못 한 나는 집에서 울기만 했다. 유축을 해서 20ml 찔끔 보냉백에 담아 면회를 갔다.

입구 앞에서 소독을 하고 하얀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쓰고 들어가면 유리문 넘어로만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우리 아기는 저 멀리 있었다. 부모가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선생님들 모니터 옆이라 다행이었다.


아픈 아기들이 많았다. 우리 아기는 혹시나 열이 날 수 있는 수치라 기다리며 항생제치료였다.

한 아기는 너무 일찍 태어나 붉고 작은 몸을 습하게 관리하고 눈도 가려져 있었다. 그 부모 앞에서 나는 선생님께 아기가 내일 퇴원할 수 있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다가 그 부모를 보니 마음이 뭉그러진다.


젖몸살이 왔다.

땅땅한 가슴은 뜨거워지고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걸 준비했는데

자연주의로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도 공부하고 했는데... 모자동실에 다 함께 하려고 했는데 ,... 이렇게 되었다.

아기는 없고 가슴은 펄펄 열이 나고 나는 점점 찌그러졌다.

내가 울면 이건 호르몬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잠을 자지 못해 모든 하루가 몽롱하면 그게 엄마의 세계라고 했다.


그때 눈물에 너무 젖어 말릴 새도 없이 아이는 태어난 지 5일 차가 되고 10일 차가 되어갔다.

달래 지지 않은 나는 그 뒤로 쭉 잘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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