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단하는 킴제이 Oct 01. 2024

무계획인 시간의 세계를 사는 연습

[랑콤 Write your future 꿈을 그리다] 워킹맘 토크콘서트

워킹맘 토크쇼에 다녀왔다. 지금 당장 일을 하는 비중이 높은 삶을 사는 게 아니지만 엄마들이 궁금했다. 신나게 마케터로 일을 하다가 아이와 함께 하게 되니 삶의 우선순위가 뒤바뀐다. 최선을 다해 직업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나는 꿈을 접어둔 사람이 되는 건가. 나의 삶에 아이가 선물이 되고 아이 삶에서 나는 그저 행복한 이 가 되고 싶다. 강의를 잠깐 하거나 일이 있어 밖에 다녀오면 그 시간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한다. 지금 2시간 강의하는 게 아이 모유수유랑 놀아주는 시간보다 가치 있나. 가치를 겨루며 시간을 혹독하게 쓰려다 보니 마음이 체한다.


그래서 꼭 가고 싶었다. 일 잘하는 노하우보다는 어떻게 마음관리를 하고 자신들을 바라보는지. 신청을 했는데 120명만 선정이라고 했다. 나이 나이 쓰고 사전질문 적는 칸에도 내 소개를 꾸역꾸역 넣었다! 저를 꼭 봐주세요! 운영사? 협찬사? 이름이 아래 적혀있어서 연락을 했다. 여성재단이 적혀있길래 전화를 했더니 담당자가 휴가라셨다. 진저프로젝트는 번호가 없어서 디엠을 보냈다. 절실했구나 나! 며칠 지나서 답장으로 신청자명을 여쭤보셔서 보냈더니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역시 되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


왕복 3시간을 가는 일, 차라리 자는 게 나은 거 아닐까 고민, 아이랑 떨어지는 것에 대한 어색한 불안,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갔다. 버스에 오르고 걷는 것에 몸이 많이 부담스러워한다. 시간 맞춰 도착해서 밖에 있는 케이터링 음식들을 챙겨 먹었다. 들어가서 앞쪽에 앉았다. 맨 앞자리는 시선 각도가 안 맞을 거 같아서 두 번째 줄에 짐을 올려뒀다. 

결론의 끝자락부터 말하면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갔다가 별로면 후회하면 되는 거지 모 하고 갔었는데,,

(진짜 가고 싶으면서도 막상 별로일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내 시간이 금이다)

사람들한테 박수도 받고 위로받았다. 나의 이야기가 보이는 그녀들의 시간을 들으며 앞으로 마음의 방향을 어떻게 기울지 선명해졌다. 사전질문지를 넣었을 때는 아기가 4개월이었다. 3분의 강연 끝에 질문 3가지에 대한 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던데 질문 3개 중에 2개가 내 것이었다. 


"4개월 아기 엄마입니다. 아이가 이렇게 안 자고 제시간이 없을 줄 몰랐어요. 워킹맘 선배로서 육아와 일을 하는 중 포기한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기 4개월 엄마가 있나요?"


조심히 손을 들었다. 제가 낸 질문이에요..

다들 어머나 우와 하신다. 4개월이면 지금 얼마나 힘들 때인데요. 여기 계신 분들 박수 쳐주시죠!

나는 왜 이럴까, 앞으로 내 시간은 없는 건가 불안하며  탓했던 시간들을 위로받는다. 다들 겪었던 시간이라니 어차피 힘들 거니까 힘들지 말아야겠다 싶다. 강연장 앞쪽엔 통유리였는데 밤이 되어 조명아래 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살도 많이 찌고 모자랑 재킷을 푹 눌러 입은 모습이 어색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박수받아 마땅한 시간을 혼자서 애간장 녹이며 목을 조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나와 가장 친해야 하는 나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밀어 구석으로 내몬 건 아닌지.


질문의 답변을 김고운 연사님께서 해주셨다.

무계획인 시간과 세계를 사는 연습을 하시는 겁니다. 진짜 힘들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아이가 1년 동안 정말 많이 큰다. 불안하고 어렵지만 그 안에서 또 희열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누리셨으면 하는 건.. 지금 이 시간 동안 슈퍼파워를 얻는 거다. 


듣는데 눈물이 난다. 휴지도 없고 찔끔찔끔 소매로 닦았다. 왼쪽 소매에 구멍이 나있었다. 강연 동안 내 마음을 촉촉하게 토닥여준 문장들이 정말 많았다. 그전에도 봤었을 말이고 이전에 회사 아이 키우는 분도 토로했던 말이다. 그때는 알았는데 지금은 온몸이 절절 끌어올라 마음이 동한다. 다 같이 사진을 찍는 시간에 연사분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진정한 응원의 눈으로 마음을 끌어올려주셨다. 또 눈물이 난다. 찌르르르 목구멍이 뜨끈하지만 담백하고 기분 좋다.


내 딸이 살았으면 하는 나로 살아야겠다.


서은아 님의 말이다. 출산으로 3개월 휴직하고 복귀, 2년을 다니다가 퇴사를 마음먹었다고 했다. 회사는 기다린다고 했고 자신이 엄마로서 준비가 되었었나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4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조직으로 돌아가셨다. 들으면서 낚아채 빠르게 적어둔 문장들.


'내 딸은 주저하지 않았으면 선택하면 존중받는 삶'

'아이와 나 이 작은 팀에서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그녀 덕분에 성장하고 몸추지 않겠다'

'나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나는 어떤 엄마로 보이고 싶은가?'


일하는 자신의 딸을 초대했다고 한다. 십몇 년 전부터 재택시간을 유지하며 마케팅 일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물어보신다고 했다. 팀원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회의하고 아이 학원 복도에서 화상미팅을 하고... 아.. 나는 일과 육아가 분리되어 선택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었다. 한 생명이 소중하니 아이를 우선으로 뒀는데 그러다 보니 일생각을 할 때마다 미루고 싶고 최선을 다해 달려들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을 해야겠다. 함께 강의를 하고 엄마들의 몸과 마음을 위한 일을 해야지. 아이 몸을 감싸 안으며 강의를 하고 운동을 해야지. 아 그리고 이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나는 무엇이 자라고 있는가?


아이가 자랄 때마다 키를 재는데 어느 날은 아이가 묻더란다. 

"왜 계속 키를 재는 거야?" 

"응 키가 커가니까 행복하잖아."

"그래? 그럼 계속해야겠네. 엄마도 키 재자"

주변 어른들이 웃으면서 엄마는 이제 키가 줄어간다고 하자 아이가 엄마는 키가 줄어서 슬프겠다고 한다.

그때 서은아 님은 아이는 앞으로 성장하는데 나는 어떻게 성장할 건지 생각해 보셨다고. 

"엄마는 눈에 안 보이는 성장으로 해"

그 성장을 눈에 보이게 하고 아이에게 어떻게 보여주실지. 나는 어떻게 알지 생각하셨다 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며 아이에게 알통을 보여준다고. 그럼 나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시간들이지 않을까?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나를 살린다고 붙잡아보는 것들에서 배움을 얻고 있다. 이것들이 성장지표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기록부터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도 한다. 나의 딸이 언젠가 또 엄마가 될 텐데. 나와 같이 험난한 고민을 한다면 내 기록을 보고 힘냈으면 좋겠다. 차근차근 찬찬히 적어 설명해놓을터이니 그 문장들에서 위로받고 살았으면 한다. 

아이를 낳고 나를 낳아 기른다. 정신이 밑바닥 쳐 마음을 갈아내다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다. 이 밝고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내 무기력이 묻어나지 않을까 겁이 나서 시작한 마음공부. 내가 나를 살려보고 싶어서 시작한 이 시간들. 잘 해내고 싶다. 더 나아지는 나임을 믿는다. 힘들고 지치고 시간을 쥐어짜 내기가 쉽지 않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매번 이 고민이다. 그래도.. 내가 한 선택이 옳았다고 믿을 수 있는 힘을 길러봐야지.

그게 맞다고 힘주어 살면 된다. 나를 믿고 살면 돼.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고 쓰다듬어 주자.

잘했어.


*후기 2편

https://brunch.co.kr/@kimikimj/139





작가의 이전글 뱃속아이와 네팔 싱잉볼 여행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