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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Aug 31. 2021

남는 한마디가 없네요

삼키기 힘들었던 피드백이 결국

한달을 준비했던 세미나를 마치고 내려왔다. 몇몇 분들과 마지막 질의응답을 나누는데 저 멀리서 감귤 천연염색옷을 입은 분이 걸어오신다. 


"안녕하세요! 내용 잘 들으셨어요?"

"네, 정은님은 참 에너지가 좋은데, 남는 한마디가 없네요.

앞에 발표 하신분은 내용이 산만한데 그래도 하나의 메세지가 기억이 나는데"


주변엔 아직 짐정리하신 분들도 계셨고 바로 앞에는 방금 전 명함을 서로 주고 받은 대표님이 서계셨다.

'분명 다 들었을거야'

너무 놀란다는 감귤 분과 대화 더 나누고 말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심장이 계속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 퇴근하면 새벽까지 남아 자료를 만들고 채우고, 떨려서 화장실에서 춤추고 올라갔던 무대. 너무 많이 하는거 아니야 라는 대표님 말에도 그래도 오신분들께 많이 알려드려야죠! 요즘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하면서 꾹꾹 채웠던 시간들. 모두가 나에게 수고 했다고 해도 그 분의 말에 계속 휘둘려 맥락없이 흔들린다. 그러더니 내가 '아니 나는 직장인이라고' '아니, 나는 더 많이 알려드리고 싶다고' 한발짝 물러서 숨을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그 피드백은 꽤 오래 남아 부정했다가 그래도 맞는 말이지 하며 연습했다가 삼키기 힘들었다.


다시 자료를 봤다. 한시간 세미나에 수두룩 붙어있는 PPT 자료들. 남의 이야기만 넘친다. 유튜브에서 미국 블로그에서 봤던 최신자료들을 틀을 잡아 붙여놨는데 내 이야기가 없다. 소리를 전달하는 기계일 뿐 내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자료와 말로 나를 감췄다. 그래도 불쑥불쑥 속마음의 변명거리가 튀어나왔지만 발게벗은 눈으로 나를 보니 아직 멀었다. 이제 좀 무대에서 덜 떨려서 잘하고 있나 싶더니 진정이 되니 내 수준이 보인다. 급한 마음으로 준비하기에 바뿌고 떨린다고 난리치기 바빴지 자료의 목소리를 오롯이 듣지 못했던 것같다.




"1시간 내용을 10분에도 1분에도 말할 수 있어야한다."

제이콥은 발표 준비한 내용을 듣다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더 쉽게 말해봐" "그래서 킴제이 너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무 길어" 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래서 결국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 잘 정제된 말을 마음에 품고 말이 멀리 뻗어나가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자료로 설득하고 틀을 만들어 나가는 거다. 


자료를 만들면 PPT를 먼저 켰었는데 이제는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그래서 오신분들이 듣고 싶은 말은 뭘까?"

일단 그 한줄을 워드에 적고 그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글을 쭉 써보았다. 그럼 일단 내 생각 틀이 잡힌다.

그리고 내가 전하고 싶은 그 한줄을 더 힘있게 뒷받침해 줄 3가지 이유나 사례를 적어본다.

마케터가 회사 다니면서 강의하면 좋아요! 라고 말하면 마음에 맺히지가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강의를 해보세요! 3가지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첫째는 회사에서 배운 내용을 결국 다른 이도 궁금해한다. 시장이 있다라는 것. 둘째는 하루 10분 투자로 제가 월 100만원을 더 버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마지막 3번째로는 다를 더 적극적으로 세일즈 할 수 있어요 라고 이야기를 하면 메세지에 근육들이 붙어 무게감이 실리고 잘 들리는 말이된다.



회사 다니면서 사이드프로젝트로 강의를 했기 때문에 브랜드사 마케터들이 궁금해 할 내용으로 자료를 만들었었다. 보다 내 경험을 실어서 말을 하니 아는걸 말하는거니까 평가당할 것만 같은 긴장이 사라진다. 내가 말할 메세지(주제)를 정하고 뒷받침 3개를 정하면 PPT에도 그대로 실현했다. PPT자료라는게 내가 잘 모르면 페이지를 붙잡고 이것저것 넣게 된다. 아는거라고 신나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전체 흐름을 잘 모르니 안다 싶은거에 집착하고 핵심내용이라 밀어붙이는거다.


PPT도 생각이 정리가 안되면 켜지 않았다. 노트에  PPT를 그려보고 틀이 잘 갇춰지는지 무게감이 한쪽에만 있지는 않은지 계속 봤다. 그러고 나서 자료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메세지를 다듬고 만드니까 거침없이 쭉쭉 디자인을 해내갔다. 


동생을 불러다가 야 들어봐 하고 이해가 다 되는지 물어보고 1시간 자료를 10분안에 말해보고 1분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한달에 한번은 세미나를 했었기에 연습하면서 해보니 조금은 수월해진 것것 같기도 했지만 '남는 한마디가 없다' 라는 말이 항상 따라와서 목을 죄어왔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을까. 다른 마케터 모임자리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내려왔다. 저 뒷쪽 책상 줄에서 감귤 색의 그 분이 또 걸어오시..? 한눈에 알아봤다. 하늘하늘 거리는 옷을 입고 색안경을 끼신 분인데 나에게 다시 걸어온다


"아 오늘 이야기 정말 잘들었어요. 저는 미국 마케팅을 준비하는데 트위터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기억을 못하신다 나를. 순간 당황했다가 물어보신 내용에 내 생각을 편히 말씀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시며 진짜 잘 들었다며 떠나셨다. 마술같은 시간이다. 나 더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려고 온 분이 아닐까? 목구멍 안쪽을 콱 쥐어잡아 말을 막히게 했던 그 한마디가 이제 꿀걱 삼켜진다. 그 분 덕에 8개월 동안 수없이 다른 되집어보며 연습했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은 무대에서 반대로 떨리지가 않았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면 어쩌지?' '내가 뭐라고 무대에 오르냐.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은데..' 그 발게 벗겨진 마음에 무대가 두려웠는데, 그 피드백을 소화하는 과정에서는 그저 주제를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만 생각했다. 방점을 달리 찍으니 떨릴 시간도 없었다. 은인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러고 보면 세상이 나에게 던져주는 말들이 참 많다. 아직도 내게 걸어오면 얼굴을 몰라도 한번에 알아볼 수 있다. 천연감귤색 옷의 은인. 모를 분들도 내게 와서 메세지를 던져준다. 세상만사 내가 찾아가면 배움이다. 그리고 다 해보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떨던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 다 된다 그러니까 원하는 일을 하면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지 결국 되니까. 2년을 연습하니까 내가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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