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와서 정신없이 정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유식 용기며 고무장갑, 행주, 숟가락, 젓가락을 다 챙겨 왔다. 이번엔 아이랑 함께 하니 여행처럼 훌러덩 떠니기가 어려웠다.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집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유식을 해먹인다는 생각에 메모지에 써가면서 짐을 쌌다. 부족한 건 하면 되지만 물가도 물가이거니와 뭔가 사러 나가는 것도 육아에서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불안함을 이렇게 물건 챙겨가며 감춰서 왔다. 도착해서 탁 트인 빈 공간을 보이 별별 마음이 다 피어오른다. 집이 비어있는지 오래됐다고는 들었는데... 아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 1층 관리자분이 오셔서 2시간 정도 물을 틀어놓으라고 했다. 약품인가 뭔가 누리퉤퉤한 냄새가 나네.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 시판 죽 이유식 사 온 걸로 어떻게 해봐야겠다. 아이가 안 먹긴 하지만 이거 먹이고... 바나나도 먹이고 해야지.
그렇게 5일 정도가 지난 거 같다. 바로 다음날 코스트코 가서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했다. 필터가 있는 물병도 사고 먹거리도 하고 토퍼도 샀다. 모든 것들이 부담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실수하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에 물귀신처럼 제리의 맘도 갉아먹었다. 온신경이 아기가 잘 못되거나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챙기도 또 챙겼다. 더 해낼 것도 없는데..
신생아 중환자실 니큐에 있었던 모습, 입원실에서 전화를 붙잡고 울던 내 모습, 아기를 두고 집으로 와 젖몸살에 신경이 찢어질 것 같은 시간, 새벽에 30분마다 깨던 아기, 발을 동동 구르며 전화했던 119, 처음으로 겪어본 위경련, 호흡이 가빠져 떨리던 눈, 이 조각들이 몸에 쌓여서 공기 순환이 되니 않는다.
오랜만에 Core power yoga를 갔다. 하와이 가면 바로 가야지 했는데 2주 만에 갔나 싶다. 그전에도 갈 시간이 있었는데 괜히 뭐라도 집안일을 더 챙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와이 집을 구할 때 Core power yoga와 가까운지 구글리뷰로 거리를 측정해보곤 했다. 3년 전에 너무나 즐겁게 다니고 친구들도 만들었던 곳.
막상 가려니 가서 체크인할 때 영어로 뭐라고 하지? 모든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I am here for C2. Jay Kim Yes, Yes.
Oh you must be Mika. Nice to meet you!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말을 하는 지금 상황이 붕붕 떠 어색하다. 속으로 내게 이런 모습이 있나... 싶다. 별생각 없이 즐기고 총명했던 거 같은데.
정말 오랜만에 내게 집중해서 요가를 해본다. 아 팔이 잘 뻗어지지 않고 온몸이 굳었다. 건강하게 웃는 Mika 선생님이 말한다.
I guide you today, but you are the real guide. Follow yourself. Just listen to your body and do what makes you feel comfortable.
'세상의 흐름이 앞만 보고 가면서 내 뺨을 후려져도 내 몸과 마음을 지고 이고 갈 사람은 나다. 그래 뭐든 내 마음이 편한 게 정답인 거야. 여기 온 거 정말 잘했어. 목표는 오늘 여기 매트 위에 있는 것. 이미 다 했다. 그러니 편히 쉬자.'
온몸을 뻗어 전사자세를 하면 앞거울과 옆거울의 내 두 모습을 바라본다. 아 저게 난가?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지? 살이 두툽 하게 찌고 얼굴도 어색하다. 저렇게 내가 쪘다고? 막달 출산 전까지도 운동하고 윤택하게 건강했는데... 지금 나 왜 저렇지? 몸에 집중하지만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속이 슬쩍 뒤틀려 무거워진다. 속생해..
아이 낳고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다. 모유수유하며 새벽에 못 잔 몸을 끌고 나와 초코빵 먹고 간식 찾을 힘이 없으면 밥톱에 흰밥을 퍼먹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마음도 몸도 붙잡혀 밖을 잘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쪘나? 아니 근데 이렇게 변해버렸다고? 왜 내가 나를 몰랐지? 한국에서 겨울 옷만 입다가 여기서 여름옷 입으니까 그런가? 아냐...... 일단 호흡에 집중하자 Relax.... 더 천천히 숨을 쉬어본다.
사바사나 하면서 눈물이 났다. 힘겹게 지고 온 시간들이 나를 갉아먹는다 생각했는데 그걸 붙들고 있었던 건 나다. 편안하게 누운 손끝과 발끝이 더욱 깊게 노곤해진다. 더 놓아주자. 그 누가 그렇게 꽉 잡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 손아귀를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야.
수업이 끝나고 Mika에게 오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Thank you so so much. It was very first time in a while after giving a birth. My goal for today was just be in the mat. Class was pretty challenge for me but I am proud of my self that I came to here just like what you said." (문장은 모르겠고 일단 이런 말을 전하고 싶었음)
다음 날이었나 설연휴가 돼서 혜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복 받으라고 언제든 하와이 오고 싶으면 오라고.그리고 오랜만에 요가센터 가서 나를 보니 살이 너무 쪄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까지 나를 방치했나 싶다고했다.
어? 이제 너가 보이나 보다. 그 전에 정신없다가 잘됐다! 이제 보이는거네
마음이 아무렇지 않게 개운해진다. 속상했던 마음이 싹 가신다. 아 그러네? 이제 내가 보이는구나? 폭풍쉐이크 같던 내 영혼이 이제야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는거 아닐까? 아 역시 혜리랑 대화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색하고 생각이 많은 밤을 또 모른척 해보고 싶은 나지만 이렇게 하나씩 해보면 되지 않을까?
다 부서지고 깨진 시간들, 버릴거 버리고 챙겨가고 싶은거 넣고 또 빈자리는 원하는거 해보고...
이렇게 새로운 내가 되어 볼 수 있는 기회 아닐까? 출산한지 8개월 9개월이 되간다. 이제야 내가 보인다.
"킴제이 정말정말 수고했어. 위대한 시간을 지낸거야. 많이 고생했지? 사랑하고 그저 너를 안아주고 싶다. 즐기고 또 쉬어. 내가 다 챙겨줄테니 걱정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