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언니랑 통화했다. 30분이 들썩, 한 시간이 휘리릭, 끊고 나니까 1시간 30분이 지났다.
아 알차다. 언니랑 이야기를 나누면 언니 대화 한 줄에서 말이 열 줄씩 나오는 것 같다. 온몸을 감싸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옆에서 치고 가서 정신도 차리게 되고. 많이 배운다.
희정언니는 내 친구 창호의 큰누나. 아기가 중환자실 가고 조리원 취소하고 집에서 지냈었다. 그게 걱정돼서 친구가 희정언니한테 전화를 했었다.
"우리 누나가 진짜 완전 아기를 자연으로 키워서 병원도 필요 없다. 조리원안가도 된다! 이 말할 거라 생각하고 전화했거든. 꼭 안 가도 되는 이유를 누나는 알거라 생각해서... 근데 누나가 난리네. 몸 회복해야 한다고 꼭 가라고"
그때는 정신이 치여가지고 아무것도 못 했다. 친구들한테 아기 낳고 왜 코스트코를 가냐 한 소리 듣고 다시 조리원에 가야 하나 싶었다. 신기하게 때마침 중환자실에서 아기 월요일에 퇴원해도 될 거 같다고 해서 조리원에 전화를 해서 들어갔다.
그렇게 건너 들었던 언니 이름을 모유수유 하면서 어려워가지고 다시 찾게 되었다. 창호야 큰누나가 모유수유 했다고 했지? 나 혹시 뭐 물어봐도 될까? 아! 언니 안녕하세요! 저는 네네 맞아요 창호랑 고은이 친구... 몇 달 지나서는 언니.. 아니 원래 아기가 이런가요? 흑흑하면서 또 톡을 보내게 되고. 4개월 아기가 코로나에 또 시간 지나니까 목감기에 열이 39.7도까지 올랐을 때도 언니를 붙잡았다.
언니는 밤에도 전화해 주고 내 이야기를 마구 반겨주셨다. 내가 디지털 노마드로 이것저것 해봤다는 것도 어화둥둥 박수도 많이 쳐주셨다. 아이에 대해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 언니가 정신 차리라고 어깨죽지를 확 재껴 잡아주기도 했다. 하와이 가기 전에도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돌 전에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게 너무 고민이다. 언니가 왜 고민하냐. 얼마나 좋은 데 가라고 했다. 마음이 가벼워져서 또 훌라당 괜찮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하와이 와서는 이유식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랑 전화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먹이냐 어쩌냐 또 질문과 걱정을 퍼내는 나. 아히씨 글 쓰면서 이런 내가 귀엽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ㅋㅋ 전화했던 내용을 또 잊고 싶지 않아서 쓴다. 그때도 메모를 해놨는데 앞뒤 맥락이 가물가물해져서 기똥찼던 알맹이의 본질이 흐릿하다.
아 책이고 뭐고 남이고 다 필요 없다 진짜. 구석기처럼 키워야 한다.
진짜 본능만 남기고 정은 씨. 자식과 나와의 행복에만 집중해 봐 진짜
아 정말 정답이고 정답이고 정답이다. 세상의 본질적인 이야기를 또 거르고 다스리고 액기스만 짜낸 말이다.
본능적으로 행복에 따르기. 모를 세상에 불안한 마음이 엄마의 마음인 양 이것저것 남의 말에 따라가지 말자. 내가 만들어낸 위태로운 허구와 꿈도 제발 정신 차리자.
동굴 속을 더듬더듬하면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식이 시키는 대로. 본능에 집중하기. (언니가 한 말)
인간이라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 뒤집더니 기고. 처음 보는 음식은 요리조리 시간을 가지고 보고. 6시 즈음해 뜰락 말락 할 때 일어나서 8시 되면 잠든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배 위에 올려서 가슴까지 기어워 젖을 찾았을 때그 찬란한 소름을 잊지 못한다. 그런 아기가 사람이 온몸과 눈빛, 손짓, 옹알이로 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찾아간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Intuitive listening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직관력을 높이는 법, 직관적으로 듣고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도저히 마음의 소리는 뭐 어찌 듣는 건데 궁금해서 간 수업이었다. 바로 실습이 진행되었다. 선생님은 자기 직관력을 높이는 첫 번째 방법은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거라고 했다. 둘씩 짝이 되어서 과제로 미리 준비한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기억'을 한 사람이 말하고 듣는 사람은 자기의 몸과 감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인도에서 온 명상가와 나는 짝이 되었다. 마주 보고 앉아 눈을 바라보았다. 수업주제여서 인지 그분의 눈이 커서인지. 명상가라고 소개해서 그런지 이야기가 두 줄 정도 넘어가니 온세계에 깊숙이 빠져들어간다. 부모님의 뜻을 따를 수 없어 결국 인도를 떠났다고 할 때는 관자놀이가 지끈해지고 심장이 요동쳤다. 떠날 수밖에 없던 힘겨움과 부모가 붙잡고 싶은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 마음을 집중한다 생각하면 더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하며 나의 반응을 살펴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도 아기를 온 마음과 기운을 집중하여 바라보면 된다. 뒷걸음질 치지 않고 번쩍 들어 올려 사랑해 주면 된다. 사랑을 퍼 나를 때 아기가 더 잘 보인다. 마음도 열린다. Intuitive listening 수업 두 번째 실습은 명상이었다. 입을 다물었을 때 치아 끝, 그리고 그 치아에서 뒤통수까지 일직선을 그리고 작은 빛이 왔다 갔다 하는 상상을 하라고 했다. 숨을 천천히 쉴 때는 어떤지.. 가만히 지켜보라고 했다.
돌아가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는데 아니 다들 뭐.. 엄청나게 느끼셨다.나도 멋지게 말하고 싶은데.. 이런게 처음이라 간단한 영어로 솔직하게 말했다. 숨을 천천히 쉬니까 빛도 느려졌어요. 진짜 그런건지 제가 그렇다 상상한건지는 모르겠어요. 빛이 뒷통수쪽으로 갈 때는 머리 뼈 안쪽이 환해지는 것 같았어요. 제 머리 안의 공간이 이 정도였나? 처음으로 느껴봤습니다.
같이 짝이었던 인도친구는 나를 가만히 처다보더니 다음에 자기가 진행하는 비파사나 원데이 명상 수업에 초대를 해주었다. 맞다. 내 몸을 관찰하는 여유를 주면된다. 명상하고 아기를 사랑하기. 그 사랑을 괜히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의미부여한다고 부풀리지 말고. 그저 내 앞의 지금 순간에 집중하기. 아기는 알려줄 것이고 나는 알 수밖에 없다. 생각 찌꺼지들이 많으면 때가 끼어 잘 못 볼 테니 명상을 하며 비워줘야한다. 아 글쓰기 잘 했다. 언니 말이 다시 짬뽕 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된다.
진짜 이럴려고 하와이 온게 아닐까. 자연에 둘러싸여서 집에는 가구도 없이 아기랑 나랑 제리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요가를 갔다. 올해 내가 할 일은 하늘에 낀 먹구름을 지우는게 아닐까. 애써 말끔한 하늘이 되려고 하지 말고 반짝이는 별이 되어야한다고 결국 뾰족한 송곳이 되지 말고. 그 맑은 하늘은 내게 항상 존재하니 그저 먹구름을 조심스레 치우면돼. 걱정과 불만 그저 구름처럼 흘러가길 마음 놓아주면돼.
건강한 음식을 몸에 채우고 요가로 몸에 얽히는 곳없이 기운이 흐르게 하고 나를 사랑해주면 돼. 그럼 윤택해지는 내 그릇에 아이의 마음이 잘 담길 수 밖에 없다. 내가 정말 많이 배운다. 감사한 스승님들이 내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