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달라진 노마드 라이프
요가를 가는데 옷이 얼룩덜룩, 오른쪽 소매에는 아까 바나나를 먹고 아기가 비빈 흔적, 티셔츠 앞엔 아까 아기 엉덩이 씻기다 얼룩진 물기가, 머리는 안 뜯기려고 질끈 묶어 올렸다. 5시 15분 요가 수업에 아 가도 되나 하면서 일단 나간다. 집에만 있으면 밖에 나가면 안 될 것만 같은 시간이 쏟아진다. 그냥 나자빠져서 누워있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목소리는 쾌활 낭랑하게 아기랑 놀면서 대자로 뻗어 누워있다. 핸드폰 잠깐 들었다가 의미 없는 숏폼에 빠져 아차차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겨울 옷만 입다가 여기 와서 여름옷 입으니 헐레레 쪄버린 살들이 주워담을 수가 없다. 아니 왜 어쩌자고 나는 출산을 하고 살이 찐거지? 그래도 8개월즘 되니까 새벽에 별로 깨는거 없이 잘 잔다. 그 전엔 아기가 잘 안잤어가지고 정말 머리가 돌 것 같아서 뭐라도 채워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먹은 듯 하다. 그래서 그런가 몸도 마음도 2년 전보다 둔한거 같다. 그래서 마음은 바쁜데 몸은 피곤하다. 다들 육아는 그런거라는데 그른가....
아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디지털 노마드 삶은..
(네, 그때의 이야기가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지는데 써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유독 글이 집중 안되는데 서서 써야겠습니다. 꼭 쓰고 자는게 저의 목표니까요.)
예전에는 지나가다 저녁을 먹거나 때론 근사하게 오모카세를 갔다.
3년 전 하와이에서 인당 200달러 오모카세를 간 적이 있다. 왜이리 비싸 굳이 먹어야하나 했는데 제리가 경험이라며 데려갔었다. 우리만의 늘어진 시간, 혓바닥을 감싸 조여주는 찰싹거리는 감칠맛의 스시. 자전거 타고 가는 길에 잠시 들려 마신 맥주 한 잔. 돈키호테 (하와이에 있는 일본 마트, 일본의 돈키호테와는 살짝 달리 이마트 처럼 식자래를 더 많이 판다) 에서 스시사서 또 다음날 먹고.
해가지면 나가놀 수 있고 요가를 느즈막히 다녀올 수 있고 넷플릭스도 저녁먹으면서 밤까지 5-6편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저녁 6시 30분부터 긴장이 된다. 요가끝나고 나서 빠릿하게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 이유식을 후다닥 10분만에 만들어야한다. 미리 해둔게 있으니 요리조리 조합으로 준다. 나는 이유식을 제리는 우리 저녁식사를 만든다. 아기는 손으로 직접 쥐어먹고 있고 어쩌다 꼭 먹어야 할 것들은 요즘 수저로 떠 먹여준다. 그럼 테이블이고 바닥이고 내 옷도 다 이유식으로 범벅이 된다. (잘 먹다가 먹던 손으로 세수를 한다..)끝났다 싶으면 난 잽싸게 의자랑 테이블, 바닥을 닦고 제리는 아기 목욕을 시킨다. 그 다음 내가 아이를 받아 집에 불을 끄고 낮은 목소리로 잘 분위기를 만들며 놀아준다. 그 사이 제리는 샤워를 하고 끝나면 아기를 받아 분유를 먹이고 둘이 잠이든다. 나는 다음에 먹을 이유식을 만들고 남은 청소를 하고 이 밤에 뭐라도 해야하는거 아닌가 싶어 글을 쓴다.
제리는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일을 해야하니 안자면 안된다. 오늘은 새벽 3시부터 미팅이었다. 미국 동부시간에 맞춰일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로한 시간을 택했다.
저번에는 셋이서 월마트를 가다가 예전의 우리의 시간이 정말 귀했구나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요가하고 집에 가다가 날이 좋으면 그냥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일 다 끝났다며 주말에는 넷플릭스 연달아 12개씩 보고, 머리아프고 지겹다면서 이것만 더 보자고 하고. 이제는 이런 시간이 없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흥청망청 써볼 수가 없엉....다른 가족과 친구없이 둘이서 육아를 하다 보니 온몸으로 떼운다. 명상이나 요가 수업 저녁은 생각도 못 하겠고 간다는게 제리에게 미안해져서 부담스럽다. 그래도 한번쯤은 꼭 듣고 싶은 수업은 들으러 가봐야지. 스스로 만든 이 깐깐한 시간에 매몰 될 필요 없다.
일 끝나면 오늘 뭐할까? 하면 홀푸드에서 피넛버터 사기, 유기농 토마토 세일한다니까 그거 사기, 미국은 아기들 이유식으로 정어리를 먹인다는데 정어리 사러 가기? 집앞 해벽 석양보기? 아기에게 맞춰진 목적이 내 요구사항이 된다. 아직은 집정리가 안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신없이 오후 2-3시까지 시간을 보내면 (모르겠다 수유하고 먹이고 재우고 일 좀 하면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러있다.) 그 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저녁 6시가 되면 먹고 씻기고 빨리 잠들어야하는 스케쥴이 있으니 그 틈에 뭘 하야할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엄마한테 잠깐 맡기도 가기도 하고 친구들이 안고 있으면 좀 쉬기도 했는데...휘리릭 지나가는 시간에서 하고싶은 것들이 한정적이 되고 필요한 것들을 하는게 희망사항이된다. 이전엔 숨겨진 여행특급장소들을 잘 찼기도 했고 꽂히면 갔다가 인연을 따라 또 새로운 여행을 가기도 했다.
당근과 쿠팡이 없는 하와이에서는 다 직접 나가서 사야한다. 아마존 배송도 3-7일 걸린다. 아 처음엔 이게 버거웠는데 지금은 아 조금씩 좋아진다. 오늘도 집 앞 파마스 마켓에 가서 야채를 사왔다. 한국에선 쿠팡으로 주문해버릴거를 오늘은 쩅쨍한 하와이 날씨를 누리며 장을 봤다. 코스트코 가는 길에 10분 더 운전해서 아기랑 같이 물놀이고 하고. 마트 갔다가 집에 바로 안가고 두블럭 더 멀리 걸어서 해변 석양도 보고 온다.
저번주 토요일에 카카아코 파머스 마켓 갔다가 하와이 전통음식 포이를 먹었다. 타로를 짓이겨서 발표시킨 죽? 요거트 같은건데 아기한테도 좋대서 꾸준히 먹여보고 있다. 잘 먹는다. 파시는 분이랑 대화를 하는데 목요일마다 워크샵을 한다고 해서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니까 글 쓰다보니 좋다. 먹고 자는 소중한 일상을 더 누리며 살아보고 있다. 예전엔 마케팅 컨설팅으로 돈을 벌어야해. 프로젝트 요기까지는 마무리하고 자야해. 내 수준의 한계를 목표로 착각하느라 잘 먹고 잘 자는걸 챙기는걸 좀 촌스럽다 느꼈다. 지금은 잘먹도 잘자는 하루가 축복이다. 편히 누리진 못 하지만...지금 내 모습을 미래의 내가 엄청 귀여워할거 같긴하다..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어떻게든 셋이서 살아보고 있다. 처음엔 어떻게 아기를 둘이서면 키우냐 했는데 다 된다. 제리가 아기 안고 미팅하고 나는 아기도 우리도 같이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을 개발?한다. 시간이 더 귀해져서 할 말, 안할 말 가려서 또렷하게 원하는 걸 말하게 되었다. 아기 잘 때 글을 쓰고 일을 하니 2시간 걸릴 걸 30분에 끝낸다. 쓸데없는 일은 진짜 안하게 된다. 해봤자 내 잠만 줄어든다. 어디 멀리 못 나가보지만 여기서 이 뜨끈한 하와이 공기를 마신다는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지친 나는 오늘도 맹한 눈 빛에 입은 살아서 아기랑 노는데 창문 넘어 뭉게구름에 무지개가 떠있다. 내일은 싱잉볼 수업도 예약해뒀다. 지금은 졸린데 꼼지발을 세워가며 초 집중해서 글을 쓴다. 하루를 꽉 채워본다. 찬찬히 적응해서 더 누려야지.
이번엔 렌트카를 일주일 예약했다. 아기 이유식을 곧 세끼로 늘려야하는데 그 전에 돌아다녀야한다..
새벽 6시 첫수, 9시 이유식, 12시 수유, 2시 간식, 5시 분유, 3-7시 사이 저녁, 그리고 자기 전에 분유다. 여기에 점식식사가 추가 되면 나는 하루종일 먹이고 씻기고 닦기만 할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