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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랑 와버렸다. 하와이

삶이 내게 말해주는 것

by 일단하는 킴제이

저번 글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타자 위에 손을 올린다. 요즘에는 펜을 잡고 손가락으로 눌러쓰는 글이 더 편하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랄까. 타자 위에서는 타닥타닥 기분 좋은 소나기처럼 가볍게 글이 뿌려진다. 아기낮잠 재우고 책상 앞에 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푸르른 하와이 산자락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도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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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나는 하와이에 왔다.

비행기 타러 가는 차 안에서만 해도 이게 맞나. 안 갈 수 없나. 제리 회사에서 다시 연락 안 오나 하는 마음이었다.

23킬로 짐 6개에 배낭 2개를 챙겼다. 하이체어까지 챙겼다가 그건 빼고 왔다. 엄마, 상연이, 창호, 고은이가 공항에 함께 해주었다. 시간에 떠밀러 아기를 안고 가면서 정신이 없는데 가족들과 친구들이 더 빠릇하게 붙잡아주며 챙겨줬다. 공항에서 짐도 날라주고 빼먹은 건 없는지 마지막까지 짐 확인을 해줬다. 한 번씩 안고 인사를 나눈 거 같은데 벌써 기억이 흩뿌려져 날아가 기억이 잘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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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빼먹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그래 이건 여깄 지' 하면서 만져댔더니 놓고 온 게 많았다. 집에서 떠나자마자 제리랑 우리 이제 안 챙긴 건 아쉬워하지 말자! 사면돼! 하고 나왔는데 공항 라운지에서 이유식 먹이는데 물티슈가 없다ㅋㅋㅋ 행복둥이는 손에 쥐어서 자기가 직접 먹는데 죽으로 주려고 하니까 숟가락 잡고 난리가 났다. 혹시나 하고 시판 죽 8개를 샀는데 앞으로 어쩌지. 비행기 타기 전과 내려서 먹어야 하는데 아.. 일단 챙겨 온 딸기랑 바나나 먹이고 간식도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쌀과자는 아직 준 적이 없는데 혹시 몰라 챙겨 왔고 3일 전부터 잘 먹나 조금씩 줬다. 빨대컵도 연습시키고.


드드드드 비행기가 뜨고 귀가 먹먹해지려고 할 때 바로 분유를 먹였다. 의사 선생님이 출발할 때 하지 말고 어느 정도 뜨면 그때 줘야 한다고 했다. 너무 일찍 주면 먹고 나서 귀가 먹먹해질 수 있고 나중에 주면 귀가 아프고 어쩌고... 모든 말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붙잡고 있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지 몇 번을 되새기고 되뇌다 보니까 마음이 바빠져서 여유가 없었다. 그 마음을 비집고 제리가 뭔가 새로운 방법을 주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마음이 예민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비행기에서 난리 나면 어쩌지"


생각에 붙잡혀 몸도 마음도 그 불안함을 쫓아 믿게 된다. 젖병을 물다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뿌리치면 아 귀가 아픈가 봐! 칭얼거리려고 하면 아 모유를 더 할걸 왜 은근슬쩍 그만둬가지고! 별별 상상을 하고 이유를 찾으려고 잘 지나간 과거도 들춰서 탓을 해본다. 여유가 없었다.

그러네 정말. 마음을 불안하게 두면 똑똑한 요놈이 이유를 만들어내서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행복둥이는 잘 잤다. 8시 25분 밤 비행기라 분유 먹고 토닥토닥하고 대화 나누다 보니 품에서 푹 잠들었다. 베시넷 설치해 주셔서 눕혔는데 5분 - 10분 되면 울어버렸다. 원래 자면서 뒤척이고 뒹굴거려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불편했나 보다. 손도 올리고 싶고 손가락도 빨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엥- 울었다. 둘러업고 복도에서 토닥토닥. 운이 좋았다. 우리 자리는 비행기 두 번째 구역이었는데 바로 앞 벽 앞에 우리가 앉았다. 화장실 벽인 줄 알았는데 작은 통로였다. 거기서 아기를 안아 둥실둥실하기가 좋았다.


결국 행복둥이는 내 품에 안겨서 갔다. 제리가 하겠다고 했지만 편히 깊이 재우는 건 내가 좀 더 나서서 하고 싶다. 잠깐 나도 잠이 들곤 했는데 눈뜨면 허리가 아팠다. 조마조마하면서 탔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행기 안 웅- 소리도 커서 아기 소리가 묻혔다. 엥하고 울어도 3초 정도? 길면 8초 정도였다. 제리랑 번갈아가면서 밥을 먹었고 그렇게 도착했다.


후덥지근했지만 다들 웃고 있다. 알로하- 인사해 주는 직원분들, 파아란 하늘, 셔틀버스를 타고 저 멀리 하늘을 넘실거리는 산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제리도 나도 행복둥이도 잘 왔다.

사랑하는 남자와 푸르름이 밀려오는 하와이에 왔다. 행복둥이를 붙잡아 안고. 그래

어쩌면 삶은 내게 이렇게 알려주는 걸지도 몰라.


킴제이, 우리 삶은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워. 그러니 마음을 내려두고 열어재껴봐.그저 받아들이고 만끽하고 즐겨보는 거야. 행복을 누려봐. 그게 다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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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제리랑 놀았던 바다. 고개만 넣으면 거북이가 보였다. 이제는 아기랑 오다니! 와



때론 쫓아간다고 내가 멱살 쥐고 나가는 게 목표고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아. 삶이라는 품에 안겨 두둥실 떠올라 노니는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애써 목표랍시고 쫓아갈게 아니라 지금을 오늘을 누리는게 정말 맞는 말일지 몰라. 그 간단하고 쉽고 진부한 이 말들이 정답이다.

이건 아니지 않아? 하와이? 가서 우리가 살 수 있을까? 회사가 진짜 이것밖에 방법이 없대? 하면서 내쫓기듯 왔다. 왜 우리는 정착하지 못하나 이러고 있었는데..


삶이 내게 말해준다. 될 일은 될 터이니 너는 즐기라고. 배움으로 사는 사람이니 지금은 이게 맞다고.

자연에 더 둘러쌓여 위로해주고 싶다. 저 산자락을 손에 가득 품어 나를 안아올려주고 싶다. 21년 제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비자 문제가 터져 한국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제리 비자 처리과정에서 부모님의 서류가 필요했지만 갑자기 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코로나라서 서류를 어디서 찾아올 수도 없고 시간은 코앞으로 밀려오고.. 구석에 몰린 우리는 도망쳤다. 외롭고 불쌍한 제리의 목이 졸려오는걸 볼 수가 없었다. 출입국 사무소 횡단보도를 건너자 마자 웃으면서 제리야! 우리 떠나자! 회사 다 그만두자! 신나하며 춤을 췄다. 비지의 불안함으로 내몰려 숨이 가파지고 울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건 웃으며 우리를 응원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2개월 동안 한국을 정리하고 떠났었다. 힘겨운 시간들에 지쳐 싸우는 날들도 있었지만 정말 위대하고 멋진 시간들이 왔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삶이 다시 내게 말을 건낸다. 킴제이 까먹지마.

제발 마음을 열고 나를 봐줘. 세상을 봐줘.

이제 나는 엄마가 되어 다시 배워본다. 내게 오는 시간들을 맞이할 준비. 또 나는 찌질해지고 짜게 쳐박혀 울겠지만 조금씩 괜찮아질거야! 마음이 쫄려서 목이 턱 막힐 때는 히말라야를 상상하며 숨을 길게 내쉬어보자.

아름다움을 한아름 품은 삶이 내게로 오는데 쫄린다고 고개쳐박고 울기에는 야 진짜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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