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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보듯 나를 돌보기

by 일단하는 킴제이

폭풍 같은 관문이다. 에고와 결핍을 다 들어낼 준비가 되었는지 다 솔직히 까발리고 새로운 삶에서 나는 어떤 마음의 조약돌을 주울 것인지 삶이 묻는다. 출산 후 괴물 같은 폭풍이었다. 산후 우울증, 아이가 밉냐 하지만 아니다. 아이는 아기대로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근데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정신적으로 타 들어갈 뿐.

잠을 못자서 이기도 하지만 이 사랑스럽고 위대한 존재 앞에서 다 발개 벗겨지는 기분. 처음엔 출산 후 호르몬이어서 잠을 못하니까 남편이랑 싸워서 등등 아님 진짜 내가 너무나도 못난 영혼이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인생에서 넘실거리며 온 크나큰 테스트의 선물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인데? 너는 너를 잘 알고 돌보고 있니?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본다. 낳아보니 알겠다. 넘어져도 부모가 웃으면 아이가 금방 미소 짓고 또 팔을 뻗어 기어간다. 웃으면 따라 웃는다. 엄마가 말을 건네는 건 세상이 아이에게 말을 하는 거다. 요리하고 있으면 기어 와서 다리를 붙잡고 서 있고 자다가 새벽에 엥하고 일어났다가 우리가 자고 있으면 잘 잔다. 우리가 자면 잔다.

안 보이면 울고 저 멀리서도 목소리를 들려주면 안정감을 느끼며 놀고 있다. 엄마 뱃속에서 크다가 세상에 나와서 몇 개월은 엄마의 뱃속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폭풍처럼 바뀐 도동실 포근했던 엄마 자궁. 아이도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엄마 냄새, 심장박동수를 붙잡아 아 그래도 여기가 익숙은 한가 봐. 아 저게 아빠 목소리였나봐 하는거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의 세상이다.


아이만 바라볼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신나게 살아가야 하는 나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것인가. 그러다 보니 내 영혼을 더 건강히 돌봐야겠다고 명심 또 명심해 본다. 아이를 붙잡고 힘겨워할 건가. 흑흑 그건 아니잖아.

4개월까지는 정신이 너무 바닥 쳐서 눈물이 났는데 요즘은 꽤 많이 괜찮아졌다. 힘겨운 영혼을 쓸어가며 어떻게든 지푸라기를 잡았던 시간들.


01

주민센터에 전화해서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물어봐서 연결된 정신건강센터

손목에 무슨 전기장치달고 스트레스 지수도 살피고 심리상담을 3회 받았다. 아니 손목에 전류를 통하게 하는 게 어찌 뇌의 상태까지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위험지수라고 했다. 뭐든 떠나서 한 시간 내 이야기를 온전히 푹 고아서 한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02

상담해 주시는 분께 뭐라도 하고 싶다. 도움을 받고 싶다. 아니면 제가 이런 분들을 위해서 싱잉볼을 연주할 수 있으니 도움이나 기회가 없을까 여쭤봤다. 상담해 주시는 분이 감사하게도 전 국민 마음지원사업을 추천해 주셔서 일반 사설기간의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총 8회에서 나는 6회까지 받았고 수입에 따라서 지원금이 다르다. 한 시간에 8만 원 상담에서 나는 80% 지원을 받았다.


03

처음에 상담하고 맞는 선생님을 찾고 싶다고 했는데 그럭저럭 괜찮고 또 찾아볼 적극적임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면서 분석하시려고 해서 다 마음을 꺼내기 어려웠지만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접근해주셔서 도움이 크게 되었다. 불안도가 높아서 상황을 콘트롤 하려고 한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아 그럴 수 있구나 넘어가도라고 했다. 그걸로 몇주를 산거같다. 자신의 육아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그게 큰 위로가 되었다.


04

TCI 검사, 기질검사를 했다. 다니던 심리센터 선생님께 이런게 있다들었는데 해보고 싶어요해서 했다. 원래 살았던 나와는 달리 출산과 육아라는 상황이 있어서인지 답을 하면서도 아 내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싶었다. 결과보고서를 보는데 무슨 사주를 보는 것 같았다. 예민한 기질이지만 순수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다고 했었나. 스스로 인지를 잘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라 그게 내 삶을 잘 이끌어 갈거라고 했다. 말과 글을 섬세하게 다듬는 나는 가까운이의 단어에 의미부여를 할 수 있다. 검사 뒤에는 뱉어진 언어 뒤에 그 사람의 순수한 의도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05

명상 워크샵. 고요님이 하는 1:1 워크샵에 참여했다. 안방 화장실에 의자두고 했는데 그때가 출산 2개월 차인가 그랬던 것 같다. 안방 문 닫고 화장실 문 닫으니 고요했다. 아 이렇게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구나 그리고 가족들이 나를 정말 많이 배려해준다는걸 그때서야 느꼈다. 내가 바라보는 명상에 대해서 들어봐주시고 각도를 찾아줌에 정말 감사했다.


06

뉴욕에 계시는 조이님과 내면탐구 워크샵. 처음엔 1:1 산후 워크샵을 했다가 꾸준히 내면을 알아차려야함을 알고 그룹으로 진행했다. 인스타에 공유해서 나 포함 총 3명이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눴다. 나를 사진이나 글로 소개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의 문장을 공유했다. 책의 문장에 왜 내가 반응했는지 생각해보고 참여하신 분도 왜 내가 그러는것 같은지 충실하게 떠오르는 느낌점을 말씀해주셨다. 너무 좋아서 꾸준히 하고 싶은데.. 이래저래 지속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상황이 잘 안맞았던것 같다.


이제는 정말 좀 찬찬히 고요히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하와이와서 반짝이는 초록색을 자주 봐서 좋다. 아기랑 창문에 앉아서 우와 나뭇잎이 반짝반짝 햇님이 닦아주나봐! 이야기를 하는데 내 마음이 쓰윽 닦여져 맑아진다. 우와 하늘의 구름이 찬찬히 퍼져나가네 가고 싶은 곳을 가나봐! 행복둥이한테 인사하나봐! 순수함을 끌어내어 내뱉어 아이와 이야기 할 수 있는 내가 감사하다.


요가도 꾸준히 간다. 어제는 해변가느라고 못 갔는데 몸과 마음을 늘어뜨려주는 요가를 하다가 요즘엔 웨이트를 들고 근력운동하고 유산소 하는 Body Sculpt 도 나간다. 진짜 와 디질것 같이 힘든데 옷을 입으로 앙물고 한다 진짜. 남들이 빨라도 그냥 내 눈을 보면서 천천히 한다. 미소도 지어준다. 내 몸이 알으라고 정말 잘하고 있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웃는다. 후! 하고 크게 소리도 지르며 에너지도 발산해본다. 누가 뭐 뭐라할거 생각도 못 한다. 크게 뱉으면 뭉쳤던 에너지가 뿜여져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서 즐거워진다.


나를 아기 돌보듯 돌봐야지.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서 웃어주고 칭찬해주고 맛있는거 챙겨줘야지.마음 힘들어 할 때는 섣불리 방문열고 들어와서 뭐가 힘든데 그냥 말해봐 아 왜그러냐? 하지 말아야지. 눈치채도 모른척 잘 챙겨주고 쓰다듬어주다가 필요하면 그때 말을 들어줘야지.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초원에서 신나게 즐기도록 나를 응원해줘야지.


나를 잘 키우고 싶다.

그리고 이런마음으로 글을 쓴 내게도 조용히 안아주며 미소지어주고 싶다.

정은아 너가 이렇게 써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위대한 힘을 연습해보고 있구나. 대견하다 나도 보면서 많이 배워

라고 말해줘야지....꼬리곰탕으로 사골우려놨어. 이거 쓰고 맛나게 먹엉!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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