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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Sep 14. 2021

말은 사람의 향을 타고 뻗어간다

마켓컬리 김슬아 CEO,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의 스피치

어쩌다 보니 회사를 다니면서 발표를 하러 다니고 있다. 2,000명 앞에서 200명 앞에서 20명 또 2명 앞에서 다양한 무대를 경험하다 보니 말이라는 게 내 입에서 뱉어져 나오지만 참 신기한 놈이다.

떨려서 힘이 들어가면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 저 멀리 나가지 못하고 내가 선 자리에 무겁게만 떨어져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된다.

언젠가 마케팅 세미나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넨다.

"정은 팀장님! 정말 잘 들었습니다! 오늘 왜 서울에 왔나. 내가 이러려고 왔나 싶었는데 팀장님 만나려고 온 것 같습니다. 에너지가 정말 좋으시네요! "


그날은 말이 잘 뻗어나갔다. 자료는 담백했으며 나의 의도도 불순하지 않았다. (내 지식을 보여주겠어! 얼마나 아는지 뽐내고 싶어라는 심리가 들어가면 의도가 순수해지지 않는다) 자신감도 적절해서 부담스럽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질문도 하며 잘 진행되었다. 사회자 분이 안 계셔서 '뒤에 잘 들리시나요?' '조명은 어떤가요?' '잠깐 스트레칭을 해볼까요?' 계시는 분들이 편히 듣고 있는지 체크도 했고 자료를 보여드리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며 진행을 했었다. 


뿌듯함이 가득이다. 실제로 그 강연을 보고 다른 강연 자리를 만들어주신 분도 2분이나 계셨다.

잘한 날이다.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말을 빚어나가는 시간들에 내 호흡이 들어가고 집중의 시간이 스며든다.

오늘 멋진 날이다고 만끽하고 웃으며 마무리하는 날이 내게도 오다니, 또 흔들 일 일도 많겠지만 이제 꽤 자주 오는 이 시간들이 눈물겨울 정도로 반갑다.




발표를 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 말을 전하는 것. 그 목소리가 잘 들리려면 앉아 계시는 분들이 듣고 싶었던 말 필요한 말을 전해야 한다. 매번 자책하고 끝나고 나면 나 잘했냐 붙들고 물어보면서도 또 발표 자리를 만들어서 나갔다. 목표는 명확히 없었지만 그저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기록했다.


세미나를 하게 되면 내 앞뒤로 발표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잘 살펴보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어떻게 발표를 잘하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온오프라인 강의를 찾아가 무대에 서있는 분들을 관찰하며 손짓과 말투를 살펴보며 어떻게 청중을 사로잡는지 지켜봤다. 오늘의 글은 내가 기록한 사람들의 재기록이다.




마켓 컬리 대표님과 배달의 민족 대표님의 스피치

들으러 갔다가


한국 스타트업 포럼을 찾아갔다. 연차를 썼는지 그때는 회사를 잠깐 쉬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온오프믹스에서 무료 세미나를 찾아보는데 마켓 컬리 대표님과 배달의 민족 대표님이 연사로 나온다고 하셔서 바로 등록하고 찾아갔다. 코로나 전이라 오프라인 행사였고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간식도 주고 사은품도 주는 정부 지원이 빵빵한 행사였다. 이름표를 받는데 색깔별로 나눠서 주길래 아 색으로 구분이 되면 듣는 사람들 구분이 되겠다 싶어서 다음 세미나를 할 때 기존 광고주인지 새로 등록한 브랜드사인 지를 구분해서 이름표를 만들어 드렸다. 세미나 후 컨설팅 전환율이 올랐음)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스피치를 하시는 분들을 관찰했다.


마켓 컬리의 김슬아 대표님은 2-30분의 발표 시간 동안 자료 2장을 띄우시며 말을 하셨다. 오늘 자리를 위해 새로 자료나 대본을 만든 건 아닌 것 같았고 원래 알고 있는 내용을 지금 주제 틀의 방향으로 살짝 틀어 쭉 내용을 나열했다. 단단한 힘이 있다. 쭉 호흡을 뱉어낸 말이지만 아는 것이 명료하니 흔들림이 없고 잘 뻗어나간다. 똑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표님의 백그라운드는 잘 모르고 말하는 것을 처음 봤는데 당연히 떠시지도 않고 내가 왜 이 과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가치가 명확했다. 


발표를 잘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라 생각해 매번 자료를 만들어 넣고 해외 자료들을 살펴보느라 바빴었다. 그러고 준비를 하면 제이콥은 "야 너무 많아. 사람들 안 들어"라고 하셨는데 나는 발끈하며 "아니 여기 돈 주고 오는 분들인데, 이것도 저것도 다 중요하단 말이에요." 아니 글을 쓰면서 돌이켜 보니 나는 사실 상대를 위한 말 자료가 아니라 나를 치장하기 위한 발표를 만들고 있었네.. 떨리니까 뭐라도 잡아보려고 데이터와 사례들을 붙여 넣었었다. 새벽을 꽉 채워 만든 ppt에 스스로 위로하며 다 했다는 마음을 갖고 싶었나 보다. 


지금 트렌드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이 필요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바라보는 내 인사이트가 빛이 나는 이야기다. 김슬아 대표님은 자기의 관을 명확히 말로 전하는 힘이 있었다. 내공이다.

사람들이 자료를 보지 않고 나를 보게 하는 힘을 길러야겠다.

ppt는 나를 도울 뿐, 나 혼자 서있어도 내 말에서 김정은이 보이도록 해야 한다. 시선은 저 멀리 청중까지 훑어보진 않으셨다 아마 현장에 정부지원 관련하여 설득하고 답변을 구해야 하는 분들 대상에 초점을 둬서 인 듯하다.



김봉진 대표님의 순서, 대표님은 이 포럼의 사회자 역할도 하셔서 중간에 자주 말을 전하셨다. 한 섹션에서 김봉진 대표님과 정부 관계자, 신생 스타트업 CEO 세분이 의자에 앉아 포럼 형식으로 현 정부가 바라봐야 할 스타트업 지원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따뜻하다. 정서적인 교류가 완만히 흐르면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상대가 이야기할 때도 고개를 돌려 눈을 보여 고개를 까딱 까딱 움직이고 다 듣고 나서 자신의 차례에도 방금 전 말을 인용하여 살을 붙인다.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연결돼서 자신의 말로 방점을 찍히니 말이 따뜻하고 설득력이 간결하다.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깍지껴서 마이크를 잡으시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눈길이 청중의 구석구석을 훑어 지나간다. 대단한 일을 하는 분이라 생각돼서 말에 집중이 더 되는 건지 모르겠으나 은유법과 호흡이 좋다.

말을 쏟아만 내지 않고 --하지 않을까요?라고 대중에게 묻고 2초 정도 기다리시는데 그 풍부하게 펼쳐지던 말들이 순간 긴장감도 도는 게 이거다 싶다. 그 뒤로 나도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어도 묻고 2초 정도 있다가 내 말을 전한다. 그 2초 동안 각자가 생각도 하고 답을 물어볼 것만 같은 그 긴장감에 집중도 잘 된다.


말에 자기만의 향이 그득하고 윤기가 난다. 말은 사람에게서부터 들리는 소리라서 그 사람의 깊이와 운율에 따라 전해진다. 오롯한 그만의 에너지가 있는 말은 힘을 받아 쭉쭉 멀리 뻗어간다. 솔직하고 담백할 때는 힘이 붙어 단단해진다. 



같이 대표님이 되어본 �



그리고 나를 가운데 두고 두분이 대화를 나누시다가 그 옆옆에 대표님도 자리에 일어나서 내 앞으로 오시더니 다들 모여 앉아 서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가만보니 내가 앉은 자리가 연사자리..

이미 그룹에 껴버린나는 떠날 수가 없어서 조용히 내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뒤집어서 다리를 꼬고 살짝 몸을 뒤로 겨우어 앉아 직접적인 대화의 존에서는 빠졌지만 몸은 껴 있은 채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저는 직접적으로 의견을 말하지 않겠지만 여러분과 같은 대화를 하고 듣고 있습니다.' 뉘앙스로다가

앉아 있었다. 어색하고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이 세상 한국에 난다긴다 하는 대표님들을 기록하고 같은 라인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미래의 나를 잠깐 경험한것 같다.

언젠가 나도 목소리가 명료한 소리를 내기 위해 지금을 연습하는게 아닐까.

또 만날 대표님들이라서 이렇게 혼자만의 만남을 가져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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