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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Nov 14. 2022

모르는 여자의 죽음


GALT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온몸에 긴장을 두르며 살았다. 저녁이 되면 나가지 않았고 동네 사람이 약에 취한 듯 코너에 멍하니 서 있으면 가던 길을 돌아갔었다. 집의 문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언제든 문을 열고 총을 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옆집에서는 바비가 살았다. 마리화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엔 엄청나게 경계했다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리화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나도 점점 마음을 열었다. 서로 잠깐 사다리 빌린다고 대화도 하고 메이를 통해 바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도 그렇지 않아도 들었다.

바비도 내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지 한국에서 하는 강의와 사업들을 묻곤 했다. 그러나 한두 달 지나고 바비 집에서 어떤 여자분이 나오는걸 몇 번 보았다. 메이는 바비의 새로운 친구인데 갈 곳이 없어서 바비랑 지낸다고 했다. 둘이 사귀는 건 아니지만 침대도 나눠 쓰고 샤넌은 바비를 동네 사람들에게 피앙세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리 집 뒤에는 데이빗이라는 스무 살 친구가 살았는데 고등학교 같이 나온 친구가 데이빗 엄마랑 재혼을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우리 집 뒤 작은 창고에서 지냈었다. 데이빗은 메이의 일을 돕는 청년이었는데 마약에 취해 일에도 자주 늦었는다고 들었고 매번 밤마다 기타를 쳤다. 나는 경계심에 데이빗과 말을 많이 섞지 않았지만 추운 겨울에도 창고에서 지내는 데이빗의 음악을 응원했다.   


한 번은 샤넌과 바비가 식사 중인 우리 집에 들어와서 바비가 밤마다 기타를 치는데 너무 시끄럽고 동네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며 총으로 쏘고 싶다고 했다. 총과 마약의 나라에 정신이 놀아나서 그 소리를 듣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수프를 마셨다. 샤넌은 매번 쫓기는 듯한 눈빛이었으며 절대 말을 섞지 않으려고 나는 눈빛을 피했다. 물꼬를 트면 품고 있는 모든 바쁨과 불만을 쏟아낼 것 같았다. 언젠가는 메이가 바비가 샤넌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전 여자 친구 제니 때문이라고 했다. 제니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으니 샤넌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없고 또 제니가 약물치료가 끝나고 나면 샤넌에게 나가라고 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없어 보여서 걱정이라고 들었다.  

그렇게 나는 모르는 여자 제니를 알게 되었다. 메이는 식사 시간에 자신의 일인 것처럼 바비와 제니 그리고 지금의 여자 샤논 이야기를 해줬다. 때로는 스트레스였으나 또 영어 공부라고도 생각했고 모를 사람들의 인생사를 이렇게 생동감 있게 들으니 어색한 신기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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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의 전 여자 친구 제니 

제니도 바비랑 사귀면서 바비 집에서 지냈던 여자인데 메이 말로는 밤마다 제니가 옷을 다 벗고 뒷마당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곤 했다고 했다. 그럼 바비가 나와 웃을 둘러주고 같이 들어갔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니 제니 혼자서 울며 남겨진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마약과 알콜 중독이다. 

취하면 그 슬픔에 익사하려고 마지막 숨까지 토해냈다. 제니는 어렸을 적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여동생이 있었다고 했는데 여동생도 잘 못 될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어도 침대에서 짓이겨지는 제니는 총으로 아빠를 쐈고 정신을 붙잡으려고 마약에 기대게 되었다고 했다. 법원에서도 아빠를 종종 만나야 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제니는 무너져 재활치료를 받으며 사회적 보호 대상이 되어 많은 프로그램을 들었어야 했다. 아 나중에 듣기로는 그 약물에 중독된 이유도 정신병원에서 받았던 약에 중독되어서 였다고 했었다.


바비가 챙긴다고 자기 집에 데려왔으나 결국 동네 사람들의 신고로 다시 제니는 클리닉 센터에 들어갔다. 샤넌은 제니가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게 힘들 거라며 바비를 말리다가 결국 둘이서 결정을 짓지 못하고 돌아온 제니와 샤넌 그리고 바비 이렇게 셋이 한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듣다가 컥컥거리곤 했다. 알지 못하는 그 여자의 인생이 내 숟가락 위에서 울고 있다. 삼켜내야 하는 슬픔이지만 내가 하는 건 저녁에 메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미국 생활에서 샤년이 진짜 뒷집 남자를 쏘는 게 아닌가 아님 그 남자가 우리 집에 쳐들어오면 어쩌지 불안했다. 술 취한 사람들은 봤어도 약에 취한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지를 몰랐다.



동네에서 제니를 마주치면 아무 이야기 모르는 것처럼 HI를 외쳐야 하나 못 본척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나는 또 내 시간을 살았다. 제니가 죽었다. 만나면 어쩌나 하다가 그녀가 죽었다. 바비 집에서 지내다가 결국 샤넌의 의견으로 제니가 나갔다. 사회에서 주는 거주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곳으로 옮겨졌고 3일 만에 침대에서 엎드려 누운 채로 죽었다고 했다. 구겨져 살다가 차게 식었다.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 써낼 글이 없는데 가끔 듣지 못했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괴로운 기억 없이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잘 자는 하루가 그녀에게 앞으로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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