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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23. 2023

디지털 노마드, 이제야 찾은 일과 행복의 평정심

멕시코에서 글을 쓴다. 언젠가 멕시코의 샛노란 페인트 위에 찍힌 붉고 푸른색의 패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타코도 맘껏 먹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멕시코에서의 3주 차 일요일이 지나간다.

오늘 일요일 오전 11시에는 라티나의 초대로 명상에도 다녀왔다. 길을 잘 몰라서 15분 늦었지만 싱잉볼과 마음을 편히 눌러 마사지해 주는 악기 소리들을 들으며 맘 편히 명상도 하고 춤도 췄다. 이전에는 이렇게 즐기는 건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함께 여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몸의 긴장이 스르르 놓이고 음악소리와 마음의 흐물거림에 취할 수 있구나. 술을 마셨던 것도 마음 편하고 싶어서 긴장의 끝자락을 탁 놓아버리고 말을 해보고 싶어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구나.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음악을 들으며 춤도 추고 이 즐거운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들이 보였다. 손을 들어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따스한 태양의 에너지도 느껴보았다. 네팔에서 만난 친구들이 떠올랐다. 친구들 덕분에  오늘 멕시코에서 춤을 춘다. 원하는 건 언제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먹듯이 손에 쥘 수 있다. 수영을 하면 손에 담기는 바닷물처럼 사방에 있는 게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모른 척해서 미안.

행복하고 싶다고 떠나기만 했는데 가만히 있어도 내 사방의 행복을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잘 지내는 연락을 받으면 주저 없이 행복하다고 답한다. 정말로 행복하다. 사과도 달콤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숙소의 날씨도 좋다. 아직 꼭 해야만 하는 계약상의 일들 중에 당장 하기 싫은 일도 있지만 일단 해야 할 일은 하고 그만두는 것도 나의 결정이니 좋다. 




예전 회사 다니면서 방광염에 걸렸었다. 의사 선생님이 소변을 너무 빨리 보지 않고 가만히 힘을 빼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민망하면서도 아 나는 화장실까지 긴장한 채로 달려 다니나 싶어서 놀랐었다. 일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린다. 해내는 게 재밌고 한계를 후드려 패는 맛이 있다. 대기업에 다녔을 때는 엑셀을 처음 접해서(신입교육 때 받긴 했지만 너무 많은 교육내용들이 있어서 막상 실무에 쓰려니 당황스러웠다. 다른 동기들이 뭐 날랐다니 듯했다) 신기해서 새벽 5시에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작년 재작년 객단가 상승했는지 대리점 별로 추이는 어떤지 툭하면 실장님이 증감률을 말하라고 하셨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17년 6월은 작년 동기간 대비 몇 프로 상승했냐 이런 식이었다. 예전에 얼마나 달달달 거리면서 술 마시고도 누가 툭치면 3년 치 월별 숫자를 외웠다는 이야기가 내 승모근을 바짝바짝 마르게 했다. 모든 일이 나의 것만 같았다 배움도 컸지만 책임감에 짓눌려 배가 아팠다. 스타트업에 있을 때는 회사 매출이 떨어질까 봐 월 말에는 입내 단내가 나고 약에 취한 듯이 미팅을 하러 다녔다. 시간이 없으니 화장실에 달려 다녔다. 커피도 안마시는지라서 잠깐 쉬려고 카페에 가는 습관도 없어서 혼자 비상구에 숨어 눈을 감고 있었다. 신입사원일 때는 여기저기 질문하러 다니다가 엉덩이 붙을 수가 없었고 팀장이 되니 팀원들을 챙기고 나면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개인 프로젝트를 들춰볼 수 있었다. 실적은 당연히 높았다. 대기업에서도 S를 받았고 스타트업에서도 꽤 잘했다. 제이가 없으면 안 돼 소리게에 우쭐 했고 회사 밖에서도 나를 찾으면 어깨가 넓어졌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정말 빠르게 성장했지만 나는 남들이 설계해 놓은 마라톤 트랙에 우사인볼트처럼 무지막지하게 달렸다. 일과 일상을 구분해라. 이건 제이가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를 받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날리니까 옆을 볼 수도 없고 숨소리가 턱끝까지, 머리끝까지 차오르니 남의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속도가 안 나면 답답했고 해야 할 업무를 대표님 때문에 못하면 바로 찾아가서 단판을 지으려고 했다.


미친 듯이 달렸지만 중심축이 내게 없었다.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성과나 눈에 잡히는 일에 빠져가지고 축의 방점을 마음이 아닌 저 밖 타인의 측정기에 꽂아두고 미친 듯이 휘둘렸다. 중심축을 멀리 두고 달리니 축이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태풍 앞 휴지처럼 맥을 못 췄다. 


디지털 노매드로 3년 차. 여행하면서 일을 해보자고 한 건 거대한 프로젝트나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잘 사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이렇게 일하는 나 때문에 함께 사는 파트너도 함께 하는 시간 없이 일을 했다. 일탓을 하며 일의 붙들려 있는 나의 말투를 남편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밖에서의 갈증을 집에서 채우려고 하고 서로를 비틀어 짜냈다. 그러다 가족의 죽음으로 이제는 도저히 숨이 막혀서 못 있겠다 싶었다. 목이 졸려서 살펴보니 내 손이 나를 조여내고 있어서 무서웠다.


여행을 좋아해서 터키에서도 일해보고 동남아에서도 3-4개월씩 지냈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핑계로 한국에 돌아와 회사에 들어갔다. 통장을 비워내면 채울 수 있는 게 회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삶의 행복 축의 평정심이 온전히지 못했다. 여행으로 도망갔다가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피신했다. 숨통이 막혀 다시 고개를 드니까 여행으로 다시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저녁 하늘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상을 행복으로 촘촘하게 메꿔주는 습관이 안되어 있어서 여행 피난밖에 생각이 안 났다. 이번에는 다르고 싶었다. 마음도 건강하고 싶고 몸도 건강하고 싶었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내과, 산부인과를 롯데마트 가듯이 갔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가 가려웠고 손목이 아픈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이번에는 다르고 싶었다. 또 도망가면 돌아와야 함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는데 이번엔 평온을 찾고 싶었다. 여행과 일을 한 번에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좋아하니까 일단 하면 신나 할 거고.. 일에 대해 다시 정의를 해야겠다 싶었다. 일이 왜 좋은지 중요한지 쭉 적어보기 시작했다. 성취감, 배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을 도울 수 있다는 걸 3가지로 꼽았다. 그럼 회사가 아닌 내 속도에 맞춰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내고 이 성취감을 느리게 누려본다면 어떨까. 이런 계획들이 혼자서는 어려워서 마인드셋 코칭도 받고 강점 코칭들을 받으면서 선생님들과 매주 이야기를 했다. 작은 일에 나를 칭찬하고 배운 대로 거울 속 내 눈을 보면서 따뜻한 말들을 해주었다. 


미친 듯이 달리다가 정신이 바닥나 부서질 거 같으면 그때서야 급하게 브레이크를 당기며 살았었다. 그렇게 쉴 때마다 브레이크를 당긴 내가 부끄러웠다. 남들은 다 버티면서 하는데 더 이상 못 버티는 나를 탓하며 브레이크를 붙잡고 울었다. 이제는 그 트럭에서 내려걸어보고 자전거도 타본다. 내 속도에 맞춰서 걷는다. 길을 걷다가 바람을 느껴보고 싶으면 멈춰도 된다. 글을 쓰고 싶으며 쓰면 된다. 이 행위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3개월 후에는 어떤 효과를 몇 프로 가져다줄 것인지 정량목표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중심을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좋아하는 음악도 자주 들어본다. 운동도 하고 평일을 주말처럼 누려본다. 마음이 건강해지니 몸도 건강해진다. 아직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떤 뉘앙스인지. 그 시간을 보내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으면 좋을지는 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며 사업도 해보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만나 마음을 나누게 되고 내가 배우고 싶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3년 전과 지금의 내가 정서적 교류를 하는 사람이 달라졌다. 다들 일보다는 내가 우선이다. 마음수련도 하고 (그런데 다들 멋진 대표님이다) 책도 많이 읽는다. 혼자서 바뀔 수 없다면 요 사람들 어깨 옆에 껴서 대화소리라도 들어본다.

지금이 정말로 행복하다. 글을 쓰다가도 저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스페니쉬를 듣는다. 예전에 내게도 미안하다고 정말 정말 멋졌다고 말해주고 싶다. 힘들었겠지만 내가 부족해서 이제야 알아봐 줘서 그간 고생이 많았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우리가 그런데 안 해보면 모르는 사람이라 킴제이 네가 후회도 없이 미련도 없이 미친 듯이 살아준 덕에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음에 고맙다. 


평온한 마음에 더 단단해지고 비옥해진다. 잘하는 사람인 걸 아니까 원하는 일을 하며 된다. 그 시간에서 나는 배움을 얻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실패를 즐겁게 해 본다. 모든 기회가 사방에 열려있어 원하는 사과를 집어 맛있게 먹으면 된다. 행복하게 잘 사는게 나의 임무다. 오늘도 멋지게 나를 위한 일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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