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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22. 2023

네팔에서 만난 독일 친구, 라리사

3개월 간의 내 영혼을 위한 여행

라리사

그녀의 이름만 떠올리면 보고싶고 이 지구 어디에 있든 오늘도 마음 포근히 잘 잤으면 하고 기도를 보낸다.

요가센터 체크아웃을 한 빅토리아와 일요일에 따로 만나 포카라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는데, 그때 빅토리아가 새로 만난 친구라며 라리사를 소개해주었다. 호스텔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놀랍게 나랑 같은 요가 트레킹 프로그램을 신청했단다. 그렇지 않아도 잘 모르는 라즈 선생님이 가이드로 간다고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렇게 또 타인을 만나니 정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랑 산을 가는구나 싶었다. 미지의 세계로, 예측 못할 눈보라가 치는 지구 저편의 낯 섬으로 간다.


요가트레킹은 히말라야를 말 그대로 요가를 하면서 오르는 건데 일반 ABC 코스가 7일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좀 더 느긋하게 자연을 누르면서 가는 12일 코스다. 한국분들은 첫날부터 고산병 예방을 위해 진통제를 반알씩 먹으며 5일 만에 끝낸다고 했다. 4일 만에 다녀온 분도 만났다. 라리사와 빅토리아랑 같이 포카라 동네 구경을 하다가 티벳 음식점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라리사는 매년 버닝맨 행사를 가는데 올해는 부담이 된다고 했다. 갈 때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정서적으로 충만되어서 이번에도 가려고 커뮤니티를 준비 중인데(라리사 말에 의하면 같이 컨셉을 잡아 숙소를 만들고 식사 담당등 역할을 정해 축제를 즐긴다고 했다) 그 정도 비용을 투자하는 게 맞나 고민했다.


"라리사, 이전에 갈 때도 비용 고민을 했었어? 3번 정도 갔다고 했지?"

"응 정말 좋았어. 이번에도 좋을 텐데 왜 고민이 되는지 모르겠어"

"이전에 안 했던 돈 고민을 이번에 하는 거면 꼭 안 가도 되게 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날짜를 정해서 그때까지 결정하면 어때?"


타인의 고민은 객관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라리사는 그때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때 나는 우리가 앞으로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포카라에서 로컬 버스를 타는 방법도 알려줬다. 손을 흔들어 문 열린 버스를 얻어 타고 내리고 싶은 곳이 보이면 버스 벽을 팡팡 치면 문을 열어줬다. 같이 마트에 가서 트레킹 때 먹을 초콜릿이랑 견과류를 샀다. 다음 날 라리사가 요가 센터로 오고 다음 날 아침 같이 출발했다.

라리사는 독일에서 앱서비스 개발자로 일한다고 했다. 독일에서 큰 은행인데 3개월 동안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네팔과 인도를 여행할 거라고 했다. 여기 트레킹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는 10일 동안 비파사나 센터에서 묵언수행을 하며 9시간씩 명상을 했다. 처음에 네팔 와서 비파사나 센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함부로 가까이 못 갈 종교처럼 느껴지고 10일 동안 말 안 하고 글도 안 쓰고 읽지도 않는다고 해서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요가트레킹도 버닝맨에서 만난 친구 소개로 작년 11월에 신청했다고 했는데 출발 전 3일 전에 예약했다고 놀라워했다. (나는 진짜 준비 하나 없이 네팔에 와서 거리에서 옷사고 요가 친구들이 다 옷도 주고 포카라 숙소에서 장갑이며 모자며 모든 걸 빌려주셨다) 자신의 마음을 수련을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다. 그 목적의 여정에도 놀랐고 이러한 명상센터며 축제가 있다는 것도 감탄이다. 내 마음이 불안한 건 애써 숨기려고 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해방거리를 찾아가며 공부하는 사람과 해결할 수 있는 이론과 경험의 모임이 있다는 게 좋다. 나 혼자가 아니다.

라리사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이 왜 이런 기분인지 잘 들여다보는 친구였다. 둘째 날 걸어가다 라리사가 말이 없어서 한참뒤에 무슨 차를 마시겠냐고 괜찮냐 물으니 잠을 자는 곳도 지금 길도 모든 게 새로워서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 낯선 상태가 되다 보니 두통이 있다고 했다. 나라면 애써 괜찮다고 예의 바른말을 했을 텐데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음이 멋있게 느껴졌다. 남을 위해 괜찮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도 라리사를 통해 아무렇지 않게 배웠다.


히말라야 산에서는 인터넷이나 통신이 터지지 않아서 숙소를 미리 예약할 수가 없다. 사람이 많으면 부엌에서 다 같이 매트 깔고 잔다고도 들었는데 여자 3명, 샤샤 아저씨 1명이 다 같은 방에서 자야 할 때도 있었다. 추워서 샤워도 못하니 로지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고 물티슈로 닦아 마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추우면 부끄러움도 없다. 라리사는 침대를 고를 때마다 킴제이 옆에서 자야 잘 잔다며 내 자리를 맡아줬다. 식사를 할 때도 먹고 싶은 메뉴가 비슷해서 둘이 하나씩 주문해서 나눠먹었다.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산을 오르는 내게 라리사는 안식처이자 내가 돌보고 싶은 어여쁜 새였다. 라즈는 나중에 라리사가 없어도 내게 라리사 메뉴를 주문받았다. 내가 라리사 음료를 레몬진저로 시켜놓고서는 뭐 마실래? 물어보면 라리사가 레몬진저라고 말했다. 역시 통했다며 웃었다.

데우랄리 롯지, 재빨리 마름 옷으로 갈아입어야한다. 잘 때는 두꺼운 패딩까지 껴입어야함!

다들 난로가 있는 부엌에서 머물 때면 라리사와 나는 침대에 누워 한두 시간이고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대화가 더 포근하고 따끈했다. 나는 친구들에게도 쉽게 하지 못했던 예전 남자친구들과의 이야기를 꺼냈고 라리사는 다 들어주었다. 우리의 어렸을 적 기억들, 그 기억이 내게 지금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상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충실하게 집중하며 지냈다. 내 마음이 어떤지 호흡은 어떤지 잘 살펴보고 돌봤다 그래서 타인에게도 열려있었다. 편견 없이 들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더 깊은 내장이며 발이며 손이며 구석구석에 남겨진 이야기를 꺼내었다가 다시 토닥토닥 잘 개어 마음에 보관했다.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잠시 쉬어가는 그늘이자 바람, 포근한 이불에서 편히 잠드는 것 같았다.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행복하다고 외쳤고 산을 타다가 힘이 들거나 갑자기 들춰지는 감정이 나도 모르게 흘러올 때면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내주었다.


샤샤 아저씨의 눈물 앞에서 라리사는 감정은 아름다운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샤샤에게 해준 말이지만 그 옆에 있던 내 가슴속에서 깊이 흘러왔다. 맞아 감정은 아름다운 거야 슬프면 슬픈 건데 스스로의 편견에 애써 삼켜낼 필요가 없어. 사람과 세상을 맞나 감정으로 기억되는데 그걸 정의할 필요 없이 그대로 피어내면 돼.


헤어지는 날에 라리사는 많이 울었다. 인도로 간다고 했다. 아 신기하게 히말라야 가기 전에는 인도를 갈까 말까 했는데 산 타는 길에 인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꽤 만났다. 라리사는 가라는 신호라며 그냥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혼자 가는 길이라 나도 걱정이 되었지만 라리사는 역시 운 좋게 회사동료의 친구가 델리에서 라리사를 픽업해 준다고 했다. 진심으로 그녀의 spiritual journey를 응원하다. 3개월 동안 오롯이 자신을 더 알아보겠다고 떠난 라리사의 여행.

나도 네팔을 떠나 뉴욕에서 머물 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일주일 동안 인도에서 요가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우리가 누군지 알아가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써 목적을 다른 곳에 두고 방점을 타인에게서부터 찍다 보니 비교되고.. 내 마음을 감추고 옆의 속도에 맞춰 가랑이 찢어지려 한다. 아름다운 라리사, 우리가 동갑이라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이번엔 태국으로 간다고 했다. 예전에 킴제이가 태국이 좋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며 보고 싶다며 태국으로 간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여행하는 라리사. 그녀가 어디에 있던 오늘도 잘 자고 잘 먹길. 들썩거리는 감정에 놀랄 때도 있지만 다 아름답고 좋은 거니 그 슬픔도 만끽해서 잘 도닥더리며 놀아보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라리사 잘자. 고마워.데우랄리 도착해서 내게 이게 필요한 것 같았다며 안아주고 볼에 뽀뽀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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