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21. 2023

존재가 배움, 나의 라즈 요가 선생님

라즈는 유쾌하고 순수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그런 라즈를 우리는 모두 좋아하고 존경했다. 4300m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줬다. 촘룽캠프를 지나 거대한 절벽에서 물줄기가 부서지는 걸 보면서 라즈가 말했다.

"Look at the mountain, Look at the river, Look at you"

너 자신을 봐봐라고 말하는 그 순간 모든 물줄기와 산이 내게 날아와 스쳐사라지는 듯했다. 

왜 한 달을 푸르나 요가에서 지내면서 선생님을 몰랐을까?


요가 선생님이지만 나와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교류가 많이 없었다. 히말라야 오르는 건 겁이 많이 나서 전 날까지 어떤 선생님과 갈지 몰라서 답답했다. 지금까지 수딥과 대화와 정을 많이 나눴기에 수딥과 가고 싶었다. 혹시 예전에 뇌출혈 사고가 고도가 높은 산에서 잘 못 되진 않을지, 고소 공포증 때문에 얼어붙지는 않을지, 비행기 탈 때마다 아픈 오른쪽 귀가 또 문제이진 않을지, 그래서 약국에서 약을 샀는데 왜 다들 다른 처방을 해주는지 불안해했다. 수딥과 가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는 라즈가 가이드로 배정되다니 전 날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가지 말까. 


그런데 산을 함께 타는 첫째 날부터 우리는 모두 라즈를 바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맑고 순수한 라즈가 진지하게 모든 경험을 누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하루의 교훈을 얻었다. 아침 6시가 되면 다들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요가를 했다. 라즈는 숙소의 환경과 날씨 우리의 컨디션에 맞춰서 루틴을 짜줬다. 아침엔 다들 어떤 차와 음식을 먹고 싶은지 벙거지 장갑을 쓴 채로 받아 적으며 우리가 부족한 건 없는지 항상 체크해 줬다. 친구들 모두가 라즈를 걱정하며 챙길 만큼 라즈는 우리에게 집중했다. 진심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멋진 비즈니스구나. 다른 거 필요 없이 마음이 진실하면 통할 수밖에 없어.

라즈는 27살이라도 했고 50대 독일의 샤샤 아저씨는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지혜롭고 깊을 수 있냐고 물었다.

라즈는 우리의 스승이었다. 명상을 하고 라즈의 이야기를 들으면 책 수만 권이 내 신경과 핏줄에 다 스며들어오는 듯했다. 때로는 그 눈 빛은 100세가 넘은 라즈의 할아버지였고 17살의 눈싸움에 신이 난 소년이었다. 라리사는 라즈의 독려에 마음 차분히 눈물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샤샤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가진 예전 할아버지 생각에 울컥하면 라즈 앞에서는 다 쏟아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요가 수련을 해서 그런지 잘 모르는 세계이겠지만 그 깊고 넓은 삶을 향한 생각에 우리는 배움 가득한 채 매일매일 요가 수련을 하면서 11일 동안 안전하게 산에 다녀올 수 있었다.




라즈는 어렸을 때부터 요가를 했다고 했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할아버지집에서 자랐고 할아버지와 15살 때까지 옆에서 같이 잠들었다. 옛 기억은 할아버지가 매일 밤 허벅다리를 잡아 오일을 발라주던 마사지. 할머니가 할아버지 술 못 마시게 따라가라 찾아가라 하고 요가원에 가면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항상 있었다. 구루들의 명상이 시작되면 할아버지 친구들이 모두 졸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 추운 산의 롯지에서 파하하하 웃었다.

*롯지(Lodge) : 오두막이란 뜻으로 산을 오르다 머물 수 있는 베이스캠프이자 숙소

데우랄리 롯지. 오전에 날이 좋고 3시가 넘어가면 눈, 비, 우박이 내렸다 그 전에 빨리 롯지 도착해서 몸을 녹였다.

몇몇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매번 의미 없는 글을 계속 쓴다고 미쳤다고 했지만 라즈는 그게 명상임을 알았다고 했다. 라즈는 17살 푸르나 요가센터에 오게 되었다. 요가를 좀 더 수련하러 왔다가 어쩌다 보니 지금은 선생님이 되어 또 시간의 요기로 살아보고 있다. 23살이 되던 날 할아버지가 전화가 와서 하고 싶은 일은 그냥 다 하면 된다. 행복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고 라즈는 어차피 내일 만나러 가니까 지금 모든 걸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답하지 않고 행복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라즈는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 날 마지막 요가 수업을 맞치고 수많은 가족들의 부재중 통화를 보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게되었다.


나중에 할머니를 통해 들었는데 할아버지는 죽음이 왔을 때를 아셨다고 했다. 집에 계시다가 갑자기 준비를 해야겠다며 식사를 맛있게 하고 샤워를 하셨다. 라즈에게 통화를 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무시려고 누운 밤. 할머니를 조용히 불러  지금까지 고마웠다며 앞으로도 가족들과 잘 해낼 거라고 안아주시며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했다.


라즈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고 알지 못해 동화처럼 까지 느껴지는 누군가의 죽음이 감사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라즈의 할아버지와 라즈와 함께 지금 살고 있구나. 깊은 수련한자는 배움을 주고 육체가 죽어도 그들의 배움과 기억에 남아 영원히 사는구나. 때로는 라즈가 화면이 정지되는 것만 같은 아름다운 말을 뱉을 때가 있는데 그때 바다 나는 라즈의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생갔했다.

포터(짐을 날라주는 분) 수리아와 라즈. 수리아는 40대였는데 라즈가 우리랑 함께 놀 수 있도록 항상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눈이 가득한 산에서 잠깐 오전햇살이 내려올 때면 가만히 이 에너지를 느껴보라며 요가를 하다가 위치를 바꿔주었다.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를 때면 명상하듯 걸어보라며 호흡에 집중해 보라며 안내해 줬다. 어느 차가운 아침에는 누워서 요가를 할 수 없어서 의자에 앉아서 명상을 했다. 명상을 잘 모르지만 네팔에서 몇 번 해봐서 내 숨소리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코카콜라 시키는 사람의 대화, 빨래는 탁탁 쳐서 너는 소리, 사방에서 잡음이 나를 방해했다. 좀 더 내 숨소리에 집중하니 다시 조용히 가라앉아 차분해진다. 저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 의식으로 그곳을 지켜보았다. 순간 앉아 있는 자리까지 만큼 이 나였다가 저 새소리까지 내 공간이 확장된다. 넓어짐을 느끼자마자 왼쪽 오른쪽 뒤까지 모든 세상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면서 마음이 시원하게 터져나간다. 눈을 감고 있으니 지금 내가 품는 만큼이 나이며 세상을 품으면 지금 이 순간 세상이 나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시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의자 끄는 소리, 일찍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날 밤 라즈는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물었고 나는 아침에 명상 이야기를 하며 소리를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음을 저 멀리 새소리를 들으며 온 세상이 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주변소리가 잡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듯했다고 말했고. 라즈는 굳게 다문 입술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요가 니드라 (요기들의 수면상태를 유지하는 명상. 사바사나를 40분 동안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를 라즈가 싱잉볼을 연주하며 명상 가이드를 해주었다. 멜리나는 6년 전 요가니드라를 알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나는 좀처럼 집중도 안되고 바로 코골고 잠들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잠들지 않고 명상 상태를 유지했다. 그날 라즈는 우리에게 "I am creator of my own destiny" 몇번을 말해주며 가슴에 꾹꾹 담아주었다. 이 말이 평온하게 느껴져서 온천에서 목욕하고 비를 맞으며 오돌돌 떨면서 산을 탈 때도 내가 전사처럼 느껴져서 신이났다.


우리는 민트티를 마시며 아침에 일어날 때도, 레몬생강차로 몸을 녹으며 저녁을 기다릴 때도 라즈가 얼마나 고맙고 신기한 존재인지 이야기를 했다. 히말라야를 오르며 명상과 요가를 하며 각자의 큰 배움을 얻었다. 나는 원하는 걸 이룰 수 밖에 없다는 확신과 함께 목표라는 이름으로 꿈을 한정 짓지 말아야겠음을, 그리고 순간의 행복을 찾아 만끽하며 목욕해야겠다고 몇번이고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와 푸르나요가센터에 돌아와서는 라즈가 몸살이 났다. 산행중에 내가 산에서 미끌어져서 라즈가 내 지팡이가 되어 같이 내려온 날이 있는데 한쪽 팔이 우박에 다 젖었었다. 짐이 된 것 같아 선생님께 죄송했다. 그런데 라즈는 돌아와서도 새벽 6시에 싱잉볼로 우리를 깨어주며 콧노래를 불렀다. 점심시간 전 다 같이 싱잉볼 테라피를 할 때면 라즈가 연주를 하고 나서 솔직히 오늘 연주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너는 어땠다고 생각하냐 물으니 집중을 못했다고 했다고 몸이 불편하니 힐링을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다음이 알려줄테니 잘 보라고 장난치며 둘이 웃었다. 다음 날에는 그럼 너가 해보라며 스틱을 몰래 주고 가기도 했다. 이렇게 친해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곧 나도 싱잉볼 테라피 수업을 오픈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모든 순간에 집중하여 경험하는 자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기는 마음이 배움의 전부다. 힘든 산행에서도 라즈가 노래를 불러주면 우리는 신나게 따라 불렀다. 자기 중신이 선 사람이 타인진을 위해 마음을 비춰줄 때는 큰 용기가 났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걸어가며 빛나는 자체가 배움이자 위로다. 빛나는 사람은 자신이 그저 자신의 행복에 환하게 웃을 때 주변도 비춘다. 존재로 배움을 준 라즈 선생님.

킴제이가 이번 경험으로 꼭 무언가를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 어떤 길로 나를 이끌지 모르지만 글로 적어본다. 매번 책이나 그림을 그릴 때 내가 뭔가 되야 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만 했었는데, 라즈 선생님 말처럼 꼭 해내고 싶다. 만끽한 시간들을 잘 담아내어 인생의 책장에 잘 꽂아두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언어의 온도, 그 따뜻한 샤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