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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19. 2023

언어의 온도, 그 따뜻한 샤워

"언어를 온도로 잴 수 있다면 어떨까?"

"필요할 때 우주는 딱 그에 맞는 사람과 사건들로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김리사 작가 'J의 온도'



태국과 네팔을 3개월 동안 혼자서 여행했다. 남편과 잠시 떨어져서 살아보고 마음 열리고 개운해졌다.

나를 걱정하고 질책하는 건 스스로였음을 깨달았다. 괴로움의 이유를 애써 찾아보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사업이 부족해서 그래. 왜 부족할까? 왜 여행을 하고 살아서 돈을 효율적으로 못 쓰는 걸까. 뇌는 이유를 찾으려고 해 쓴다고 들었다. 왜 우울할까 생각하면 우울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우울한 이유는 지금 파스타면이 잘 안 익어서이고. 이렇게 안착해서 살지 않고 노마드가 어쩌다 하고 살다가 돈만 쓸 거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어떻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하면 그 '어떻게'에 대해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안에 답이 없으면 책이라도 읽어볼까. 누군가한테 물어보기라도 해 볼까 움직이게 해 준다는 거다. 

일단은 왜.라는 단어로 책망하지 않기로 했다. 가슴팍 괴로운 이유를 찾아본다고 뒤적거리다가 생채기만 일부러 내보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고 주변의 것들을 살펴보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성장이 괴롭다는 건 착각일지도 몰라. 이 모든 걸 즐기는 게 진실이다. 네팔에서는 선생님, 친구들, 지붕 위를 구르고 다니던 원숭이, 우리가 노래할 때마다 다시 찾아온 저 원숭이, 새소리로 가득 찬 요가 수업, 11시에 차 마시면서 햇살을 느끼는 발마사지, 나는 내 인생의 개척자라는 소중한 사실, 마음이 열리면 세상과 기회가 열린다는 사실, 2월을 지나 결국 피아나는 꽃, 자다가 추워서 껴입을 수 있는 패딩, 맑은 눈과  존재로서 배움을 주는 라즈, 뒷모습만 봐도 서로의 기분을 아는 라리사


모든 시간과 사람들이 내게 메시지를 전해주러 왔다. 


고민하며 고개 숙이고 있는 내게 어서 세상을 만끽하라며 찾아왔다. 그들과 시간을 즐기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열린다. 언젠가부터는 하루하루가 그저 행복했다. 네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가는 길. 태국에서 하루 머무르게 되었다. 우연히 공항에서 엘리스를 만나 같이 태국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럴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다. 헤어질 줄만 알았던 그녀를 만나다니 비행기 안에서 엘리스가 네팔 선생님들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도 더해주고 헤어질 때 얼마나 울었는지. 킴제이와의 시간은 어땠는지 알려주었다. 혼자 떠나는 마음이 외로웠는데 엘리스 덕분에 마음의 정리가 된다. 


"엘리스,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기대가 돼."

"킴제이 너는 하고 싶을 일을 할 수밖에 없어, 다 될 거야. 마음이 편한 걸 해봐"

진지하게 내 눈을 보고 말해주었다.

"와우, 어쩜 너는 그렇게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니?"

"킴제이. 이건 아주 논리적인 말이야. 이론이고 공식이야. 원하는 일은 내게 올 수밖에 없다."


방콕의 숙소에서는 별안간 안젤라가 생각났다. 하와이 코어파워 요가에서 만난 선생님인데 한국에도 두 번이나 놀러 오고 친구가 되었다. 안젤라에게도 내게 있었던 3개월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정말 내 인생의 개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안젤라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쳐줬다.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온걸 정말 축하하고 기쁘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느꼈던걸 다시 놓칠까 봐 두렵고 예전으로 돌아가면 의이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이미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넘어온 사람은 잠깐 마음이 쳐질 때도 있겠지만 이미 경험한 맛을 아니까 내 인생이 어떤 의미임을 다시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주가 내게 엘리스와 안젤라를 보내주었다. 아 그들의 언어의 온탕에서 노곤노곤 느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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