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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26. 2023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3편, 소울메이트)

https://brunch.co.kr/@kimikimj/77



내가 남아서 제리를 더 돌보기로 했다. 내게 어떤 선택이 옳은가 생각할 겨를 없이 상처가 너무 컸다. 병원에서 퇴원해서는 근처 숙소를 잡아서 이틀에 한 번씩 오토바이로 제리를 데려다줬다. 다행히 피부이식 수술은 안 했지만 오염된 생피부들을 가위로 잘라내고 더운 날 상처관리가 쉽지 않았다.  팔이랑 다리에 붕대를 하고 누워만 있는 제리에게 점심밥이랑 저녁밥은 사서 숙소에 넣어줬다.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서 간단히 몸도 닦아 주었고 내 시간에는 열심히 걸어 다니며 태국을 구경했다. 

생존을 가꿔나가는 병사들의 마음으로 도왔다. 나중에는 먹고 싶은걸 못 먹는다고 투정하는 제리에게 화도 내고 둘이서 예전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야기 별별 이야기를 나눴다. 할 일이 없는 제리랑 노래도 같이 만들곤 했다. 

태국이 성전환 수술로 유명하고 세계 2차 대전에서도 서양과 동양사이에서 다친 병사들이 모여 치료를 받았었다는 이야기에 태국에서 치료받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되어서야 제리가 걸을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시간이 우리에게 마구 던져진다. 한국에 여행온 제리를 만나 퇴사를 결심하게 되고 친구들과 같이 태국에 왔는데 이렇게 회오리 속으로 던져지다니. 제리가 회복하고 나서는 선지, 정현오빠를 만나서 4명이서 여행을 시작했다.  

아! 라오스 블루라군에서는 다이빙을 하다가 미국인 한 분을 만났는데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일이야기를 했다.

“어? 퇴사하고 여행하는 거 아니야? 아님 지금 취업준비해?”

“아 지금 회사 다니고 있어 여행하면서 중요한 일만 하기로 잠깐 조율했어”

“그게 돼? “ 

2015년 처음으로 여행하면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돼서 여행하면서 일을 이메일로 해도 된다고? 그렇게 일이 되나? 아 안될 건 없지 몇 번이고 물어봤다. 


태국에서는 섬에서 지내면서 아침에 텐트에서 일어나면 바로 바다로 들어가 수영을 하고 밤에는 별구경을 했다. 인터넷도 전기도 7시 이후면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들어갔다가 5일을 꽉 채우고 나왔다 (국립공원 보존을 위해서 5일 이상 지낼 수가 없다) 내 우주로 우연을 가장한 채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이 친구들과 태국에서의 시간은 큰 자양분이 되어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회사를 떠나면 영혼이 가라앉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릴 수 없는 내게 울타리 밖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사건들이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태국 무코수린 섬,  해변에서 자고 일어나면 샤워하고 나무 타고 놀았다. 원숭이가 내 사과를 훔쳤다

제리와의 만남이 내 인생의 단적인 예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존재자체도 모르고 사는 게 당연한 우리가 이렇게 만나 인연의 끝자락을 꽉 쥐고 매듭을 엮어나갔다.. 라오스에서 내가 4-5살 아이들이랑 놀다가 강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제리가 구해줬다. 서로의 생명을 구해줬다며 우리는 더 끈끈 해진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얄미운 제리 뒤통수에 돌을 던지고 싶을 날도 있었지만 그는 나의 아빠이자 연인이자 남동생이자 오빠이자 길에서 만난 강아지였다. 정신없이 지내다가 한국으로 다시 제리랑 돌아왔을 때에서야, 친구들이 도대체 둘의 관계는 무엇이냐 물었을 때서야 우리의 인연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관계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너는 너의 길 나는 나의 길을 갔다. 터키로 떠났고 제리는 여행을 접고 미국으로 갔다.  


계획이나 두려움 따위는 벗어났을 때 비로소 모든 세상의 문이 내게 열림을 몸으로 만끽했다. 살면서 어떤 질문을 품고 사는지에 따라서 그에 맞는 삶과 앎이 온다. 


회사에서는 왜 나는 이러지 질문할 때는 내 존재에 의문을 품어 마음을 들 쑤셔서 아팠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그날 먹고 싶은 걸 먹어보며 온전히 여행에서의 나만의 시간을 누리니 먹구름이 개이고 하늘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총총 별이 되어 떠 있다. 어떤 걸 하면 행복할까 터키에서는 어떻게 지내볼까 고민하면 생각만 해도 설렌다. 인생의 목적은 그저 이 모든 것을 즐기고 만끽하는 것일지도. 미국에서의 뇌출혈 사고, 태국에서의 제리 교통사고, 라오스에서 물에 빠질 뻔 한 사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내가 계획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해야만 하는 건 지금을 무조건 즐기고 행복을 찾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야 해. 


지금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말을 제리는 매번 했고 나는 매일 배웠다. 그때는 잘 몰랐어서 앞으로 우리가 결국 헤어지지 않을까. 예전의 사랑처럼 결국 헤어짐이 있는 연인이 되겠지라는 생각에 겁이 나서 제리를 보냈다. 예전의 상처가 되었던 일이 지금 눈앞에 일어나지도 않는데 혼자 착각하며 만든 미래의 불안과 핑계로 제리라는 멋진 친구와의 인연을 손에 놓았다. 둘의 인연도 내가 더 적극적으로 결정해서 다시 끈을 연결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또 그 관계를 남이 더 나서주길. 누군가 정의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남에게 선택권을 주려는 순간 내 존재는 사라진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아마 내가 좀 더커서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깨닫기 위해 제리가 온지 않았을까? 마음을 열어 자유를 쫓을 때 내가 가장 빛나며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기회들이 나를찾아 온다고 알려주려고 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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