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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29. 2023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4편, 벼랑길)

여행을 하며 반짝이는 존재로 만났던 제리가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계획했던 터키로 갔다. 기억이 안 나는데 엄마 말로는 엄마 나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거야.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날 사랑하겠어. 뭐 할지 몰라도 일단 가서 찾는 게 맞는 거 같아라고 취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말했다고 했다.  

뚜렷한 계획은 없었지만 일단 가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일에 지쳐 도망을 가는 것도 맞았다. 이유가 뭐든 뭐라든 가고 싶다는 게 가야 하는 이유다. 터키를 왜 가야 하냐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터키에서 시간을 더 잘 보낼까 고민하는 게 더 값졌다. 터키에서는 하우스셰어를 하며 어학원부터등록했다. 예전에는 영어로 말하고 디자인으로 손발로 표현했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언어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가격이 가장 괜찮으면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걸어서 40분 정도의 거리. 시리아에서 온 10대 청소년들이 많았다. 나는 생일 안 지난 만 나이 27살이라고 해도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래도 그 친구들과 금세 친해져서 같이 쉬는 시간에 장난치고 놀고 놀이동산 가는 약속도 잡고 그랬다.  


제리의 인연이 아쉬웠지만 여전히 내 마음을 모른척하고 싶었다. 감정을 솔직히 전하는 게 촌스럽게 느껴지고 겁도 났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지내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이 좋은 관계를 연인의 헤어짐이라는 결론으로 맺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많았는데 그만큼 겁나서 머리가 복잡했나 보다. 몇 년간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동네 작은 슈퍼에서 토마토, 감자, 치즈도 터키말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스탄불은 바다가 항상 보여서 좋았다. 어학원 40분을 걸어가도 여행 같고 터키어가 익숙해지니까 예전에 같이 살았던 터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더 간절하고 깊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바쁠 때는 빨래를 돌릴 정신도 없어서 비키니를 안에 입고 출근한 적도 있었다. 그리웠던 언어를 배우며 밥을 지어먹으니까 조금씩 나를 집중할 있다. 

어느 날 제리에게 연락이 왔다.


“킴제이, 나 지금 체코에 왔어. 터키를 가려고 하는데 가면 만날 시간이 있을까?”

“요즘 어학원이랑 일 때문에 바빠서 사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터키에서 좋은 시간 보내기 바라”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들춰내거나 들키기 싫어서 맺음말을 그냥 후딱 던졌다. 몇 마디 더 서로 하게 되었고 제리가 터키에 도착하는 표를 보냈다.

“시간이 되면 만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 


우리는 공항에서 만났고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 웃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이전에 그 일은 무슨 의미였는지 따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서로가 웃고 있으면 돼.

제리는 서로가 겁이 나서 함께 하는 걸 피한다면 평생 후회할 거 같다고 했다. 맞아 그래 그게 맞아.

예전에 있던 일이 지금 눈앞에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걱정도 현재 진행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서만 있는 거다. 있지도 않은 일을 고민하고 걱정하면 눈에 먹구름이 서리고 마음에 때가 낀다. 그래서 답답한 소리만 한다.  

제리야 함게라면 어디든 뛰어들 수 있어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 우리는 변한 것 없이 서로를 아꼈고 좋아해 줬다. 그때 터키는 한참 IS 테러로 이슈가 많았다. 친구들이 문자로 2903 버스에 폭탄이 있으니 타지 말아라. 지금 그 동네에 경찰들이 최루탄을 던지니 가지 말아라 알려줬다. 겁이 나서 진짜 폭탄이 터지면 어쩌냐 물으니 생각보다 폭탄은 멀리 터지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이해 못 할 소리를 했다. 


제리에게 이전에 내가 생일파티 했던 식당이라며 소개해줬는데 밥을 먹고 나오니 최루탄 냄새가 너무나 매웠다. 사람들을 따라서 달리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 달아 곤봉을 든 사람들을 보면 겁이 나고 무서웠다. 같이 지내던 룸메의 사촌의 친구였던가. 친구의 사촌의 친구였던가는 고아원 봉사활동을 가서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는데 폭탄이 터져서 죽었다고 했다. 중국정부의 위구르족 탄압으로 (위구르족이 터키처럼 이슬람문화인데 히잡을 못 쓰게 한다거나 하는 이슈가 있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터키의 커뮤니티도 생겼었다. 마트에 가면 중국인이 아닌지 물어보고 맞다고 했으면 물을 안 팔려고 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저녁에 혼자 걸어가는데 뒤에서 나를 확 밀치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겁이 밀려왔다. 제리에게 아무래도 떠나야 할 거 같다고 하니까 사실제리가 내가 이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터키가 이슈고 IS 리더가 탁심광장 한복판에서 연설까지 한다고 하는데 자기가 떠나자고 하면 킴제이가 원하는 걸 선택함에 있어서 혼란스러움을 줄 거 같아서 별말 안 하고 있었다고 했다. 

터키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제리가 알기에 깊은 마음, 기쁜 마음으로 내게 공간을 내주어 혼자서 충분히 고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터키를 떠났어야 한다니. 터키 간다고 퇴사하고 큰 송별회까지 받았는데, 부모님께도 이게 전부인 마냥 말하고 왔는데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서 퇴사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터키에서의 테러 사건들을 보고 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미란탱에게 연락이 왔다. 마카오 친구인데 프랑스 남자친구와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몇 번이고 연락이 왔다. 제리 대학동창도 영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종종 터키는 괜찮은지 장기간 출장으로 집이 비니 위험하면 영국으로 오라고 했다. 어느 날 저녁은 두 명의 남자가 나를 계속 따라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다음 날 비행기표를 사서 떠났다.  

터키에 가겠다고 엘지전자를 들어가고 또 퇴사했는데, 일에 쫓긴 건지 혼자서 갈 곳 없어서 빨리 달리기만 한 건지 벼랑 끝에서 더 이상 내 목을 조를 수 없어서 터키로 도망쳤는데…


두 달도 안돼서 터키를 떠나다니 이제 갈 곳이 없었다. 일단 더 있을 수 없어서 영국으로 가는데 비행기 안에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제리는 내 옆에 있었다. 

영국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친구가 출장에 돌아왔을 때는 친구집 거실에서 지냈다. 그 집은 특이하게 거실에 문이 있어서 다른 방처럼 지낼 수 있었다. 소파에서 둘이 꼭 붙어서 잤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가 나를 응원해 주며 떠나보낸 한국에도 다시 돌아가기가 부끄러웠다. 그 어디에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제리와 이불을 꼭 붙잡았다. 

그냥 모아둔 돈으로 영국, 벨기에, 스페인 여행을 갔다. 지금 글로 그때를 다시 써보면 내 인생에서 문이 열린 또 하나의 시간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밀도 높은 추억들이 몰려오는데 일한다고 책상에만 있어서 못 봤었다. 이제야 울며 나를 바라보았을 때 마음이 휘날려 시원할 만큼 신기한 시간들이 왔다. 의미를 따질 것도 없이 지금의 순간을 즐기며 행복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준 게 아닐까. 마음이 굳어 잔뜩 긴장한 내게 이렇게라도 극단적으로 훈련시켜서라도 알아차려야겠다고 주어진 시간이 아닐까.   

영국 미란탱과 휴고의 집. 한국 음식 해줬는데 불고기 만들 줄 몰라서 설탕을  들이부었다.
벨기에에서 만난 베키, 판초. 스페인에도 초대되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화창하게 눈부심을 그때는 몰라서 인생에서 갈 곳 없이 죄어온다고 생각했나 보다. 제리는 지금 우리의 인생에서는 돈보다 시간이 더 값지다고 했다. 맞아 그렇다. 돈은 벌면 되는 거지만 시간이 벌어지지 않는다.  

벨기에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남아를 가보고 싶었다고 제주도에서 말했는데 제리와 함께 태국을 가서 찐한 친구가 되었잖아? 사랑을 찾아 떠나겠다고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터키로 떠났는데 떠나버린 나를 찾아 제리가 왔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행을 한다. 멕시코에서 3주를 지내다가 지금은 미국 서부로 넘어왔다. 머리로 생각하는 순간 나는 겁이 많아지고 목표라는 한계를 만든다. 지금 내 수준에서 밖에 만들지 못하는 목표자체가 제한된 삶은 이끈다면? 지금까지 누벼왔던 시간이 증빙이니 그저  신나게 자유에 뛰쳐들고 사는 게 나의 권리와 임무. 거침없이 뛰어들어 나를 배워가고 그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책이 되어 용기를 주길.  내일의 나에게도 든든한 의자가 되어 위로를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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