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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Jun 11. 2023

미국에서 뇌출혈 사고, 눈 앞에 찾아온 죽음


22살 미국에서 큰 사고를 겪었다. 

아이스 링크장에서 넘어졌는데 머리로 떨어지는 바람에 묵직한 통증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스케이트를 타러 들어오기 전에 하키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얼음청소가 안된 채 우리를 그대로 받았다.

내 스케이트날이 깊은 크랙으로 미끄러져 몸이 붕 뜨더니 떨어졌다.


친구들이 왔고 민망한 나는 웃으면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통증이 너무나 무거워 머리가 질질  얼음 속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걱정하는 눈빛들이 나를 둘렀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나는 괜찮다며 웃었다. 친구 다리 위에 엎드려 누워있었던 것 같다. 한 남자분이 와서는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자기 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구급차를 부르면 되는데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괜찮다고 했다.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한번 더 물어봐주셨는데 911 부르면 된다고 다시 말했다. 나중에서야 이해했는데 미국에서는 구급차만 타도 1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거다. 오 그래.. 미국.


구조대가 바로 왔다. 토를 했는지 의식을 잃었었는지 물어보셨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하니 그럼 다행이라고 했다.

목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으니 가만히 누워있으라고 하며 깁스를 채워 침대에 실어 차를 태워줬다. 친구들은 애써 장난을 치며 나와 계속 대화하려고 옆에 있어줬다. 다른 친구들은 차를 타고 병원으로 따라왔다.


원, 투, 쓰리 

미드에서 본 것처럼 응급실에 도착해서 나를 바로 다른 침대로 옮기더니 청바지며 윗옷을 가위로 다 잘라냈다.

아마 목과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검사를 해야 했거나 다른 다친 곳을 체크하려고 한 것 같다.

CT 인가 MRI를 찍었다. 뇌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영어만 난잡하고 정신이 없는 이곳이 영화 같아서 설명이 거북했다. Brain, Blood 단어가 들리니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이 떨렸다. 선생님은 내게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예스라고 답했다.


Can you squeeze my hand?(내 손을 꽉 쥐어볼 수 있어?)

Yes. (네)

손을 흔들었다.


Do you really speak English? (진짜 영어 하는 거지?)

Yes!

Would you squeeze my hand as much as you can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손을 꽉 지어볼래?)

as much as? 오케이! 저 단어 내가 알지. 손을 더 높이 뻗어서 흔들었다.

의아한 표정의 선생님은 몇 가지 검사를 내게 더 하셨고 나는 나중에 서서야 Squeeze라는 단어를 배워서 알게 되었다.  하하하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응급차를 타고 이동되었고 응급차 옆으로 오토바이들이 붙었는데 그냥 길을 가던 사람들이었는지. 응급상황이라 길을 트기 위해 오토바이가 붙었는지. 친구들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몸상태가 점점 더 몽롱해졌다. 예를 들면 내가 A라는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시선 뒤로 시계를 보고 다시 친구를 보면 B인 거다. 정신이 없고 순간적으로 내 장례식장 사진 앞에서 울고 있는 부모님을 보았다. 아침 일찍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 뇌출혈이니까 뇌를 막던지 피를 꺼내던지 하겠지? 그럼 머리를 밀어야 하나 물어보니 부분만 절개하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목에 뜨거운 복숭아씨가 쾍 막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그런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하나. 당장 오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하시면 어쩌지. 전화를 안 했다가 내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모든 걱정들이 털 끝에 찌릿찌릿 터져 나가 내가 가보지도 못한 모든 저 우주까지 뒤흔든다. 친구들이 계속 말을 걸어주고 무언가 정신없이 돌아갔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처음에 의사 선생님이 의식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에 계속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잠들면 잠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새벽에 선생님들이 오셔서 다시 머리를 밀 곳을 체크하고 수술 전 다시 CT를 찍었다. 아 다행히도 출혈이 멈췄다고 했다. 뇌 안쪽으로 피가 났으면 정말 위험했을 텐데 나는 다행히 뇌 밖으로 피가 흘러나왔고 지금 멈췄으면 아마 3개월 뒤에 뇌 속으로 다시 흡수될 거라고 했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영어를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친구들의 입으로 또 들고 나서야 마음 놓아 울 수 있었다. 그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병실을 옮기고 나니 깊은 통증이 느껴졌다. 뒤통수 오른쪽즘으로 떨어졌는데 왼쪽 머리가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충격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신기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팠다. 


아 다행히 목뼈도 괜찮았다. 선생님들이 이 정도 충격이면 목뼈가 부러졌을 텐데 운이 좋다고 하셨다. 나는 걷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머리와 몸에 줄들이 이어졌고 소변줄도 연결되었다. 이틀 뒤에 내 옆 침대에 할머니가 들어오셨는데 새벽에 help help를 외치셨다. 그 소리가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 아주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여 할머니께 괜찮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대화는 안 하시고 help만 외치셨다. 간호사 부르는 버튼이 생각나서 눌러서 불렀다. 할머니는 다음날도 신음소리로 help를 외치 쳤고 나는 할머니 괜찮으실 거라고 말하며 울었다. 나는 정말 괜찮을까. 사고가 나서 5일 뒤엔가 걷는 연습을 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어지럽고 힘겨웠다. 선생님은 내가 넘어지면서 귀의 평행기간이 심하게 흔들려서? 몸의 균형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간호사가 말리는 계단을 3칸을 오르고 박수를 받고 돌아와서 또 울었다. 내가 계단 3칸을 오를 수 있냐 아니냐로 간호사 두 분이 저렇게 실랑이를 벌여야 하나 무스타파가 병원에 왔을 때는 다 쏟아내며 억울함을 토했다.


"아니 나는 나이도 어린데. 미국 온 지 한 달 되었는데. 그리고 미국에 아는 가족도 친척도 아무도 없는데 이런 사고가 나에게 일어났다니 믿을 수가 없다. 걷는 연습을 하면 복도가 대각선으로 기운다. 내가 넘어지고 있다는 거야." 


"킴제이..."


"아니 앞으로 어떻게 하라고 지금 이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킴제이... 잘 들어. 넌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산 거야. 누군가는 죽을 수 있었어. 네가 넘어졌을 때 머리가 얼음 위에서 공처럼 막 튀었어. 네가 정말 정말로 좋은 사람이니까 킴제이 너는 지금 산 거야."


"...."


무스파타의 사랑과 진심어림에 눈물이 났다. 그래 나는 살았다. 뇌출혈도 멈추고 재활훈련만 잘 받으면 된다. 이렇게 친구들이 나를 항상 찾아와 몸에 낙서도 해주고 장난치고 가고.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내 마음 달래준다고 장난치다가 다른 큰 병원 가야 한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을까. 


"무스타파. 정말 고마워. 나 있잖아 진짜 죽음이라는 게 한 순간이라는 걸 배웠어. 나 앞으로 온 세상의 맛있는 걸 다 먹어보고 싶어."


"그래. 넌 그렇게 살 거야 킴제이. 원하는 어디든 가고 지금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살 거야."



머리카락도 빠지고 고막에 이상이 와서 모든 소리가 날카로운 쇳소리로 들렸지만 걷다가 넘어지는 것도 잦아졌다. 두통은 오래갔고 더 이상 수업을 듣는 것도 어려워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기숙사를 나갔어야 했는데 갈 곳이 없어서 뉴욕의 호스텔로 갔다. 얼마 전 기숙사 앞 편의점에서 총기사고도 있었고 뉴욕에 가면 뭔가 집이 많지 않을까 하고 일단 호스텔로 떠났다. 거기서 캐나다 의대생을 만나 같이 내 검사 결과를 보면서 내가 앞으로 뭘 조심하면 되는지 이야기도 나눴다. 뉴욕에서 집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호스텔에서 옷들도 잃어버리고 뇌출혈 때문에 당분간 비행기를 탈 수도 없다고 해서 한국을 갈 수도 없었다. 




https://brunch.co.kr/@kimikimj/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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