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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Jun 11. 2023

미국에서 뇌출혈 사고, 죽음이 내게 알려 준 것 2편

https://brunch.co.kr/@kimikimj/85


사고가 난 뒤 돌아온 기숙사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머리가 너무 아파.. 그냥 한국 가고 싶어"

"의사 선생님이 비행기 타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어?"

"너무 아파 그냥 가고 싶어 흑흑"

"그럼 그냥 와. 한국에 다 포기하고 와"


억욱하고 화가 났다. 딸이 뇌출혈 사고로 아프다고 한국가고 싶다고 투정부리는데 못 가는거 알면서 매정하게 그럴거면 오라고 하는거지? 내 마음을 꽉 쥐어주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야 엄마가 그때는 아프다고 한국에 배를 타고 오든 방법을 찾아서 침대에 실려 비행기에 실려 오든 방법을 찾아서 내가 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다친사람. 아픈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평생 아픈 사람으로 살 것 같아서 일부러 더 모질게 말했다고 했다. 킴제이가 잘 되고 건강할걸 아는데 자기 연민에 빠지면 안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엄마는 가지도 않는 점집까지 찾아가 괜찮을지 물어보고 한약도 힘겹게 미국까지 보내주셨다. 단단하고 넓은 엄마 덕분에 나는 미국에서 방법을 찾아나갔다.


호스텔에서 지내면서 계속 집을 찾았다. 전화로도 문의하고 이메일도 보내는데 그간 병원과 보험사와 대화하면서 영어가 꽤 많이 늘었다. (쥴리랑은 지금 보험사에서 녹음메세지 남긴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서로 30번 이상 들으며 아 이게 숫자 9, Nine 이구나 알았다며 박수쳤었다) 미국 Craigslist 통해서 룸메를 구한다는 글에 연락을 하는데 좀 처럼 집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골져를 만났다. 내가 이메일에 계약 Contract 을 Contraction (출산 전 진통) 이라고 잘 못 쓰는 바람에 한 아시아 여자가 지금 뉴욕에서 임신해서 혼자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호스텔 생활 한달 만에 방도 구하고 골져와는 정말 엄청난 속도로 친해졌다. 아프리카 여행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여성문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하는 친구였다. 석사 논문 끝났다고 파티를 하며 눈문 주제로 친구들과 신나게 이야기 하다가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Virgina 라는 연극이였는데 무대위해서 성행위를 혼자 생각하며 쓰러지며 신음소리를 내는 연기를 했는데 골져의 다채롭고 화려한 삶이, 주저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 당참이 그대로 느껴졌다. 

학생비자가 끝나면 미국을 떠나야하는데 다행히 잠깐 쉬웠다가 좋은 기회로 다시 비자도 연장할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헤어졌던 친구들도 내가 괜찮은지 보려고 한번씩 뉴욕으로 놀러 왔다. 빠졌던 머리도 다시 났고 주기적으로 갔던 병원에서는 이제 안와도 괜찮다고 했다. 


사랑이 가득했다. 무스타파 말 처럼 나는 죽을 수 있었지만 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걸까? 내가 원하는게 뭘까? 생각해보았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뭘 해야하지? 그래 세상에 맛있는건 다 먹어보자며 맨날 뉴욕거리를 걸으며 구경했다. 영화같은 사랑도 했으며 뉴욕대 수업도 과감하게 신청해서 들어봤다. 직장인들을 위한 특별 수업인데 월 30만원인가였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잘 살고 싶어서 철학책들을 읽었다. 지두 크리스티나무르티는 매일 매일 죽어 다시 태어나라고 했다. 하루를 충만하게 살다가 죽어 다시 태어나 죽을 것 처럼 살으라고 했다. 삶과 죽음은 동시에 있는 것이라 죽음을 이해하면 삶도 더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뇌출혈 때문에 바로 한국에 갈 수 없었지만 덕분에 뉴욕이라는 곳에서도 살아보게 되었다. 오후 5시에 걷다가 노란 하늘을 볼 때면 마음이 벅차오르고 5월의 장미가 그렇게 아름다웠다. 나는 살아있고 오늘 하루를 걷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건 덕분에 나는 정말 세상에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여행하며 산다. 23년에는 태국에서 발리에서 네팔에서 살아보며 하루하루 삶을 펼쳐본다. 나는 안다. 눈 앞에 왔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나를 위해 사는 삶을 살야야 한다고 말해주려고 잠깐 찾아왔었다. 골져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배웠다. 일을 하다가 위축 될 때면 무대위에서의 그녀의  눈빛을 떠올린다.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갈까 막연해지면 골져의 아프리카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며 나도 나만의 이야기가 가득가득한 행복한 삶을 가꾸는 농사꾼이 되어야지 마음을 다시 잡는다. 


멋진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면 죽음이나 크나 큰 시련을 겪어본다는데 나도 그 챕터의 시간이 찾아온게 아닐까.  정신없이 사는 내게 항상 메세지들이 찾아왔는데 놀고 마셔야한다고 못 들은 척 하니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덮쳐온게 아닐까.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지금 글을 쓰다가 1분 뒤에 내가 눈을 감아도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러니 기필코 하루하루 모든 선택들을 내게 이로운 것으로 택해야지. 살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데.. 내게 친절하며 이 삶의 의미를 배우며 마냥 행복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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