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테크닉 사키코 선생님 개인레슨
이 일을 내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그 시작은 사키코 선생님과의 개인레슨이었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전 세계 각지에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고 선생님들마다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양하다.
그래서 지금 이걸 설명하면서도 조금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 역시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부분일 테니까..
사키코 선생님과의 개인레슨 후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장요근의 다리와의 연결감과 그 이완의 상태였다. 그런데 그것이 내 뿌리, 가족과 상관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고관절의 불균형과 좌우의 다른 사용에 대해 내가 자각하고 있는 수준은 몸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오른쪽 고관절이 밖으로 향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고 무릎이 그 영향으로 회전했으며 발목에서 보상이 나타나 발바닥이 지면에서 불안정하게 자리를 잡는 형세인 것은 이미 3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서사가 가미되어(여기서의 서사는 수많은 치료와 교정을 통해서도 그것이 바로 잡힐 수 없는 부분이라고 확인시켜주곤 했던 과거) 어쩌면 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키코 선생님과의 개인레슨에서 장요근의 이완이 느껴지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기억 속에 사라졌던.. 내 것이 아니길 바랐던 순간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물론 몰랐던 사실은 아니었다. 그런데 난 그 사실에 대해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여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를 이해하겠다는 논리를 앞세워 전쟁피해자이고 그 트라우마가 상당할 것이라는 막연한 포장을 통해 그의 폭력성을 묵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빠는 불같이 화가 많은 사람이었고, 항상 집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었고, 내가 자전거를 탈 즈음에는 찾으러 다녀야 하는 사람이었다. 화가 나면 전화기를 부수는 일이 일상이어서 우리 집 전화기는 몇 달 가지 못했다. 가히 고장 난 전화기 잡화점 같았다. 가끔은 우리들이 있는데서도 방안 구석으로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시퍼렇게 멍든 엄마의 우는 얼굴을 마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의 지금의 아빠는 더없이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다. 엄마와 사이좋은 부부로 그렇게 노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농담도 하고 애정표현도 하며 그 간의 일들이 눈 녹는 사라진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화목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안정감을 내려놓고 진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성인이라는 것이 두려웠고, 그로 인해 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지금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빠 편에 서서 아빠의 의견에 동조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무의식적으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긴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옳고 그름의 명확한 잣대가 "폭력성"에 맞춰져 있었고 그러면서 일곱 살짜리 아이가 보였다. 엄마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품은 보호받았어야 하는 아이가 여전히 그 방안에 있었다.
이 사실을 마주하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순간,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관절에서 일어나는 경향성들이 명확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스스로 이리저리 실험해 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월 초에 사키코 선생님을 다시 뵈러 갈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은 용기도 생겼다.
그런데, 인생의 절묘한 타이밍이 이번에도 내게 왔다!
지금 나의 프로세스를 안전하게 안내해 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선생님..
그런데 첫날은 그 생각만으로도 눈가에 눈물이 맺혀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나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