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테크닉 타미 탐슨 선생님 개인레슨
타미 선생님이 오셨다. 작년 여름 베를린에 가지 않아 5년 만에 뵙는 거였다. 줌으로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역시 선생님을 직접 뵙는 건 달랐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순간 내내 나는 흔들려도 괜찮다는 걸 안전하게 경험한다.
선생님의 말씀하나하나에 마음이 동요된다. 물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기도 하시만 선생님과 함께 하며 전달되는 미묘한 파동들에 나도 동조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전함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저 알게 되는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 첫 만남은 전체 워크숍이었고 그 과정안에서도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에고가 깨지는 과정.. 어쩌면 지금 내가 그 프로세스 중인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나보다 훨씬 더 실재적인 것인데... 결국 아직도 나는 그 서사에 발목 잡혀 놓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거창한 신념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지를 새삼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틀 뒤 개인레슨을 받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많이 해봐도 결국 지금 내가 프로세스하고 있는 것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소리로 전달되어 터져 나간다.
"Violent" 이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시작된 테이블 레슨...
내 서사들이 가감 없이 흘러나온다.
처음엔 내가 그 서사들이 놓지않으려 하는 걸 알았다. 설마 선생님이 이걸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와 나조차도 너무 놀랐다. 내가 이걸 놓기 싫은가? 싶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기다려주셨다. 분명히 알고 계셨을 거다. 거부하려는 그 모먼트를.. 거기서 내가 인히비션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러면서 작업은 계속되었다.
장요근과 연결되어 몸 안에서 묵직하게 내려지는 편안함 그리고 목과 머리 앞쪽에서 느껴지는 이완이 발끝까지 전달되었다. 내 어깨는 그동안 이런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해,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그래서 나는 계속 되뇌었다. "I don't need to try do something hardly." 그 순간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말을 몇 번 하고 나니 내가 숨을 쉬는 것조차 애써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늑골의 긴장감이 살포시 내려가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왼쪽 가슴과 견갑골 뒤쪽 늑골사이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보호하고 싶었구나. 그 어린아이는 엄마를 지키고 싶었단 걸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그 어린아이는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지켜주지 못한 엄마가 없어질까, 엄마가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그게 내가 엄마를 닮아가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그게 몸에서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왼쪽의 비교대상은 늘 엄마였고, 가슴의 모양새도 점의 위치도 그 모든 걸 엄마와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비슷한 왼쪽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게 그저 내가 엄마의 딸이라 당연한 유전적인 닮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내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순간 난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어깨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 "사랑받으려고 노력하지 마. 난 그대로 괜찮다고. 내가 그때 무슨 일을 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되뇌었다. "No matter what I did in the past, I am still me." 내가 나를 부정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돌아 돌아 여기에 왔는지... 스스로 그 여정 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거부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았다. 나는 아빠에게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내가 아빠에게 사과를 듣고 싶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You don't do this to my mother." 그 어린아이는 아빠를 말리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현실을 없는 것처럼 부정하고 감정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선생님께서 어땠냐고 물어보셨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 설명하진 못하겠다고 말했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못해서 내 목에 긴장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그 말을 해보라고 하시며 작업을 지속하셨다.
그런데! 그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진짜 무엇이었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되었다.
"You don't do this to my mother. You must protect us. We must love each other."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그 한마디가 가슴에 차올라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걸 선생님은 다 기다려주셨다. "I love you, papa."
그래 내가 그랬었지만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내가 더 혼란스러웠구나 그럼에도 아직은 마주하여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거구나..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알렉산더테크닉이 심리적인 접근을 주로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나의 프로세스는 대부분 이렇게 진행이 된다. 몸을 통해 접근을 하고 그 표면에서 피상적으로 머물다 가는 경우도 많지만 깊이 뿌리 박혀있었던 몸의 기억들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며 스스로 다룰 수 있는 타이밍이 오면 저절로 세상밖으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해소라는 표현보다는 그 순간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진실을 마주해도 괜찮고 그걸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선생님 해주시는 역할은 함께 있어주시면서 나를 지지해 주시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가끔 물어보셔도 내가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말하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 이 과정들을 정리하는데도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 느꼈던 것들이 아직 다 남아있는지, 어쩌면 퇴색되고 잊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순간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또 다르게 변화하고 지구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된 건 큰 선물이다.
그리고 나도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될 수 있길 마음깊이 바란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곁에서 지지해 줄 수 있는 편안함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