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떠올리다
몸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보면 내가 주의를 기울여야만 들리는 게 아니란 걸 알게된다. 늘 하고 있었던 말이었는데 내가 지나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제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회전을 하는 일이 생겨 연결성이 살아나는 게 다가왔고 그게 몸통으로 아주 큰 나선형을 그리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어깨에서 불편했던 움직임이들 살아났다. 그래 이런 움직임들이 내 안에 있었구나. 그런데 난 왜 그걸 막고 있었지? 늘 이렇게 그 원인을 찾으려한다. 그 원인을 찾으면 그동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니깐, 지나온 시간에 대해 나만의 변명이 되어주길 기대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실 그것도 진짜 이유가 아니었던 적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 단지 나는 어딘가 기댈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그냥 보내주지 못하고 늘 이유를 찾는 건 어쩌면 인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생각이 내 모든걸 설명해줄 거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 가볍고 얕은 수에 늘 넘어가면서 거기에 또 기대어본다. 모처럼 따스한 오후 햇살아래 걸으며 눈부신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그 없이 이 봄을 내가 20년가까이 살아왔구나 싶었다. 그가 태어난 봄이라서, 어쩌면 더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늘 새로운 봄을 이십년 가까이 보내면서 나는 중년을 넘어섰고 이제 곧 50이 된다. 갑자기, 그가 나이들어감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시린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움이라기 보다 정말 아쉬움이었다. 시간을 함께 쌓고 서로의 나이들어감을 응원하면서 바로봐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걸 그 순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봄 햇살 아래 눈물로 길이 어울거려도 그 순간만은 좋았다. 나의 이십대는 너무 힘들었기에 나는 줄곧 나이 먹기를 원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좀 더 편안해지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어제 그를 떠올린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고, 얼마전 그의 생일 전에 꾼 꿈에서 그가 놀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그렇게 담백한 대화를 나눈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직도 그는 내 꿈에 자주 등장하고 시간을 보내고 간다. 내가 원하는 건지 그가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조금 위안이 되긴 한다. 그도 그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테니까.
수업을 하다가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왜 운동을 터부시하거나 힘든거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을까? 운동회 연습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 퇴약볕 아래 줄지어 서서 마스게임이나, 꼭두각시, 부채춤을 연습하던 기억들이 있다. 친구가 벌에 쏘여 벤치에 앉아 있는데도 우리는 계속 연습해야했다. 친구는 왜 양호실에 가지 않았지? 왜 보고 있게 했을까? 운동회가 뭐라고 그걸 그렇게 연습했단 말인가!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그때부터 막연한 거부감이 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몸을 쓰고 땀을 흘리고 그 안에서 고요함을 찾고 사용을 보는 시간들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을만큼 몸을 쓰면서 살고 싶다. 자유롭고 수려하게
작년부터 시간한 소리영어수업이 1년을 채웠고, 영어과외는 4년정도 된 것 같고, 전화영어는 6개월하고 쉬고 있다. 원어민 수업을 시작했고 쌤이 던전주는 주제가 늘 흥미롭고 생각을 다양하게 한다. 작년엔 승마를 더 잘 하고 싶어서 요가를 시작했는데, 이젠 요가를 더 재미있게 하고 있다. 승마하느라 작년에 하지 못한 바다 수영을 올해는 할 수 있을까?
올해는 정말 신기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그 수업의 영향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생각이 아닌 마음으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그냥 쏟아내 볼 생각이다. 수업을 한달 단위로 만들어 볼까 한다. 개인레슨도 1개월 기준 4회로 45분 수업에 30만원으로 책정하면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분들에게 부담이 덜 할 것 같다. 일단 한달을 해 보고 거기서 출발하는 것도 괜찮을테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면 못하던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의 모든 사용방법이 달라진다. 그 자체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게 바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뭔가 더 새로운 걸 알고 배우고 싶어하는데 목말라 있는 현실을 살고 있어서, 수업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받아들이기 쉽지만 몸을 통한 배움은 어려워한다. 왜냐면 이 배움에는 늘 더함보다 덜함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덜함을 경험하면 안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덜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우리가 너무 애쓰고 노력하는데 익숙하다보니 그게 잘 안되는거다. 그런데 내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이제 약 10년정도 연습하고 실천하고 생활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더 많이 덜 피곤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된 것 같다. 회사를 다니고, 영어 공부를 매일하고, 저녁에 알렉산더 테크닉 수업을 하고 요가도 일주일에 3회이상하고 가끔 승마도 하고, 주말에 아침에 휄든 수업도 듣고, 전세계 각국의 동기들과 만나는 새로운 수업을 시작했고, 원어민과 한시간 내내 이야기하다보면 주말 오전이 금방 지나간다. 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는 걸 보며 봄이 옴에 기뻐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저녁엔 광화문에도 나간다. 이 모든 시간들이 그저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선택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날 더 살아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