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청바지

내 기억을 새로 쓰는 방법

by 이니


접혀 있던 청바지

서울로 전학 갔던 H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집 앞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정신없이 놀았다.
한참을 놀고 들어왔을 때, H의 엄마가 청바지 하나를 건네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어보았다.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내 몸에 딱 맞는, 어른들의 옷 같던 청바지였다.
이상하게도 그 바지는 나를 조금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바지를 자주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그 바지를 입지 못하게 했다.
너무 꽉 껴서 보기에도 좋지 않고, 옷도 금방 해질 것 같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그 말을 하며 청바지를 내 방 문 앞에 접어 두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바지를 계속 입었다.
왜인지 그 바지를 입으면 금방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엄마의 걱정을 피하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
허벅지가 닿지 않게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내가 걷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것도,
그 선택이 내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지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키가 크고 몸이 변하면서, 더 이상 그 바지를 입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저 아쉬워했을 뿐이었다.
허리 24인치의 그 청바지는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청바지가 나에게 남겨 준 것,

나는 30년 넘게 스내핑 힙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병원을 찾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고, 수술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증이 없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그 상태로 사는 쪽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
좌우가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분명한 감각,
그리고 어딘가 어긋난 듯한 걸음걸이.

카이로프랙틱도, 롤핑도 받아보았다.
그때마다 잠시 균형이 맞는 것 같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 질문을 품고 있던 어느 순간,
알렉산더 테크닉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바꾸는 방법이 있다고?

내가 나를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깊이 와닿았다.


나는 시니어 선생님들께 개인레슨을 받을 때마다 내 이야기를 했다.
내 몸의 상태를 설명했고, 그것을 새롭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 작업을 이어오던 중,
어느 순간부터 그날의 그 청바지가
자꾸 떠올랐다.

마치 나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몸으로 어떤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시점과
그 청바지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이
겹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걸렸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시간,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선생님들께 몇년 전에 들었던 말들이

이제야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우연한 순간, 새롭게 찾아온 청바지

그러다 며칠 전, 평소처럼 산책을 하며 기본적인 디렉션을 떠올리고
계단을 올라가던 순간이었다.

아주 사소한 움직임 속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연결해본 적 없던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문득, 그 청바지가 떠올랐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옷장 대부분이 내 옷일 만큼 옷이 많고, 자주 사기도 한다.
대학 시절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즐거웠다.
옷을 정리하고, 만지고, 입어보는 그 모든 과정이 좋았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취향이라고 생각해왔다.


다시 쓰여지는 기억속의 청바지

그런데 그 순간,

그 감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나는 어쩌면
그때 끝내 마음껏 입어보지 못했던 그 청바지를
아직도 입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에 의해 접혀져
내 방 문 앞에 놓여 있던 그 바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놓여 있었지만,
그 장면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그 옷을 입지 못한 아쉬움을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옷을 사고, 또 사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다른 옷으로
그때의 나를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

오랫동안 나는

내 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고치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해 보였던 한 벌의 청바지였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꾸준한 연습과 함께,
그리고 나의 사유와 함께
조금씩 드러난다는 것을

나는 점점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몸으로 사유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이제는 그것을
나의 언어로, 나의 방식으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봄 날, 그 찬란한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