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되지 않았지만, 불가능했던 것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아빠가 나한테 유일하게 바란 건
딱 하나였다.
'절대로 데모는 하지 라.'
근처에라도 가면 당장 집으로 끌고 오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말은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이미 어떤 장면을 보고 온 사람의 공포였다.
나보다 8살 많았던 언니의 졸업식에서 시퍼렇게 멍든 눈을 보고 오신 아빠는
언니가 운동권의 선두에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되셨다.
아마 데모에 참여했다가 몽둥이로 맞았다는 것 같다.
나는 그 졸업식에 가지 못해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 날이후 우리집의 모토는 대학은 가되 데모는 안된다 였다.
내가 입학하던 해 IMF가 터졌고
학생운동보다 진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운동권의 언어와 노래는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언니가 방학때 마다 집에와서 알려준 것들이었다.
그때는 그게 운동권 노래인줄 모르고 마치 새로운 동요를 배우는 듯 열심히 율동까지 배웠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이 구절을 읽다 그 때의 일들이 그럼처럼 떠올랐다.
아직도 남아있는 시퍼렇게 멍든 눈의 언니의 졸업 사진과 소고기 파동때부터 탄핵집회까지 쫓아다니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던 그 노래들의 출처까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를 직접 살아내지 않았어도
무의식적으로 그 영향아래 아직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라기 보다 복종을 배우는 공간에 가까웠다.
뺨을 때렸던 사람, 치마를 걷게 하고 허벅지를 때렸던 사람, 아무 이유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벌을 세우고 수업을 안했던 사람, 그 시절 그 시골에는 별별 사람이 다 선생이었다.
그곳에선 질문보다 침묵이, 이해보다 순응이 더 안전했다.
이상하다는 억압되는 감각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감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수간 나는 '문제 있는 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기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웠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 안에 들어갈 때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질문을 멈추고, 의심을 접고, 설령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더라고
그 감각을 뒤로 미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냥 방어적으로 자연스럽게 몸에서 일어났다.
지나고 나서야 그 복종의 무가치함에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엔 그 틀안의 소속감 때문에 정당한 비판을 제기하기도 어려웠고
그들도 정단한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선생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그들도 모르게 그들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요구했다.
그래서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불의를 불의라고 여기지 조차 못했는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이름이 가진 그 무게감과 억압감에 그대로 복종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선생님'이라는 말보다 '쌤'이라는 말이 훨씬 익숙하고 쉽게 불려지지만
그들은 그 조차 불쾌해했었다.
참 안타까운건, 아직도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현실이다.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안전하고 견고한 지지를 받아보지 못한 자들이
또다른 희생량을 만들어 그들의 부를 채워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손에 칼을 드는 건 두려운거다.
그 칼은 타인을 향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서 있었던 방식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비난하거나 정의를 바로 잡으려고 싸우기 보다는
지금의 선택을 바꾸는 일이다.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다시 배우는 것,
내가 참아내지 않아도 되고,
질문해도 괜찮은 공간을 직접 만들어 가는 것,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안전과 여유, 그리고 스스로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 하는 것,
앞으로의 5년, 10년 후,
우리가 만들어갈 이 필드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
더이상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지는 배움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리 위해서
비로소 배움이 시작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