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사라지면서 나타난다

by 이니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한동안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꾸려고만 했다.

더 나아지려고, 더 편해지려고,

지금과는 다른 어떤 '상태'가 되려고 애를 썼다.

퇴근 후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자기계발을 거듭해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고치고, 바꾸고, 더 잘하려고 할수록 이상하게 더 어긋났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금방 제자리였다.

아니, 돌아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굴레를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나는 문제가 ‘부족함’에 있다고 믿었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정확해야 하며,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질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지금 정말 부족한 걸까? 아니면, 이미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더 해보는 대신 조금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더'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 있어 보는 것.

알렉산더 테크닉을 하며 얻은 가장 큰 혜택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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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움직였고, 여전히 반응했으며, 여전히 생각했다.

그런데 아주 잠깐, 낯선 순간이 찾아왔다.


수업 준비를 하느라 혼잣말이 떠오른 찰나였다.

실제로 말을 뱉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을 하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시절의 습관이었을까,

혹은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간절함의 반영이었을까.

나는 입술조차 떼지 않았는데 내 몸은 이미 '말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목 안쪽이 좁아지고, 혀 끝이 긴장되며, 연구개 위쪽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느낌.

나는 단지 생각을 했을 뿐인데,

몸은 이미 그 생각을 투영해 온 힘을 다해 '전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다르게 하려 하지 않았다.

고치거나 더 잘하려 애쓰지도, 방법을 찾지도 않았다.

그저 이미 하고 있던 그 '불필요한 동작'을 계속하지 않았을 뿐이다.

습관적으로 이어가던 긴장을 그대로 이어가지 않는 연습,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하던 것을 멈추는 연습이었다.


그 멈춤 이후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만든 변화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이미 가능했던

본연의 움직임이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알렉산더 테크닉을 하기 전까지는 변화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더 나은 방법과 정확한 선택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경험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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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면서 나타난다.

비워진 자리에 비로소 원래 있던 생명력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대신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만드는 방법이다.

어쩌면 당신도 그 순간을 마주할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하고 있음'을 계속할지,

아니면 멈출지는 오직 그 찰나의 알아차림 속에서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선택은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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