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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wook Jan 20. 2016

나는 아가 나비를 그려 넣을 수 있을까

내 나이 34. 선택의 기로에서


꿈꾸는 나비. 2016. 1.17. Inwook



2016년 1월 19일 새벽 4시. 얼굴에 피가 마르는 듯한 건조한 초조함을 뒤로 한채 눈을 떴다. 찢어질 듯 시린 눈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다. '첫 소변.' 임신테스트기에 쓰여진 이 한마디가,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도 잠 못이루게 했다.


30살, 늦으막히 조금 알려진 회사에 경력 입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1년이 지난 후 5년 연애한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새벽-낮 출근, 낮-밤 퇴근. 호르몬이 엉망진창이 됐다. 살도 30킬로가 훌쩍 쪘다. 여자로서 아름다움은 일에 치여 저 멀리다 뒀다. 그러고 2014년 8월말 첫 아가가 찾아왔다 사라졌다. 그래도 투정부리지 않으려 열심히 일했다. '난 아직 젊어. 괜찮아' 하고 최면을 걸으며. 그리고 1년 뒤 지난해 9월, 또다른 아가가 왔다 사라졌다.


'여기 더 있다간 난 아기를 못 낳을거야.'

그러고 난 3년 10개월이란 내 경력을 잇지 못한 채 회사를 그만 뒀다. 모든게 싫었다. 유산을 피곤 따위와 동급 취급하는 상사도, 일만 쫓다 이렇게 돼 버린 나도. 남편에게는 미안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건강을 찾으려 노력했다. 당장 살빼는 것이 급했다. 두번째 아가와 헤어졌을 때 의사가 지적했던 바였다. 마냥 노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친정만큼이나 시댁에도 눈치가 보였다. 약속했던 3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채근하시진 않았지만, 신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아버지와 매일 아침 운동을 했다. 8시 30분. 북한산 둘레길을 걷거나 불광천을 걸었다. 다 돌고 오면 10시가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아쿠아로빅도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때 수영을 배운 탓에 아직 잘 한다. 마치 범고래 같다. (웃음) 한약도 거금 100만원을 들여 석달치를 지었다. 그렇게 2달 반이 지나고 나니 12kg이 훌쩍 빠졌다. 한달 만에 9kg이 빠지고 나머지는 지지부진 했다. 쭉쭉 빠지지 않으니 속상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약을 먹으면 안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지럽고 몸이 한약을 거부하는 듯한 이상한 감정이었다. 흔히 예비맘들이 말하는 '숙제' (가임기 부부관계)를 이달엔 공치듯 했기에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괜히 어지럽고 두려웠기에 과감히 안 먹기로 했다. 그러고 2주 뒤, 생리예정일이 됐다. 그러고 지금까지 홍양 (생리)는 없다.


이렇게 된 거다. 내가 새벽녘 잠 못 이루는 이유. 2016년 1월 15일부터 지금까지 난 새벽잠을 설치고 있다. 빨리 진한 두줄을 기다리며. 그런데 간절히 바랄수록 좌절이 깊다. 지난 두번의 아픔 때도 그러했지만 '초초초미세', '매직아이' 같은 두 줄을 보고 있노라면, 울컥 슬프다. 또다시 사라질까봐. 그래서 난 두 줄이 가장 잘 나온다는 첫 소변에 집착하게 됐고, 새벽이면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다급하여 울적하던 어느날, 디퓨저에서 떨어져 나온 나비장식이 보였다. 딱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주기로 맘 먹었다. 장식을 캔버스에 대고 한쌍을 그렸다. 떨어진 장식이 애처로웠던 것도 사실이나, 조금 더 솔직해지면  아가가 생겼다는 기쁨을 담은 그림이었다. 행복하고 설레고 그런 마음. 그런데 차마 아기 나비는 그릴 수 없었다.


'또 사라지고 나면 후회할거야. 아가가 집을 잘 짓고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건강하게 태어나면 아가 나비를 그려 넣어야지.'


아가를 가졌다는 기쁨도 있지만, 밀려오는 경력단절의 불안감을 어찌할 줄 몰라 재택근무라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다가, 임신을 포기했더라면 지원했을 법한 회사 공고가 들어오면 깊은 공허함에 빠지곤 한다.


34살의 나, 아가를 원하고 사랑하지만, 오랜 기간 일을 못한다는 것. 내 커리어를 잃는 것은 두렵다. 살은 빼고 싶지만, 격한 운동을 했다간 슬픈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가를 위해 하루 종일 집에서 쉬면서 청소 하고 빨래하고, 음식하고, 남편과 함께 먹을 맛난 저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슬프다. 난 아직 이기적인듯 싶다. 그래도 오늘도 지금도 되뇌인다.


'아가야 아가야 우리 힘내자. 집 잘 짓고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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