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더위가 기승이다. 여름이니 더운 건 당연한데, 누구들처럼 호들갑 떨지 않으려고 괜히 애쓰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작년에도 이랬고, 십 년 전에도 이랬던 듯하다. 뭐라 탓할 필요도 없다. 여름은 그저 맡은 바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다하고 있을 뿐이니.
예전에 살던 우리 아파트는 멀리서도 찾기가 쉬웠다. 각 층마다 예외 없이 설치된 실외기들이, 마치 가지런히 박힌 옥수수 알처럼 일정했는데, 유독 하나 비어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2018년 5월 12일, 나는 생애 처음으로 '에어컨'이라는 신문물을 설치했다. 그 전 해 더위에 무참히도 시달렸던 기억 때문이었다. 팔과 다리를 번갈아가며 바닥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는 모습이 마치 사막의 목도리도마뱀 같았던 시절이었다. 여름만 오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지만, 가을과 겨울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선풍기 한 대씩을 두고 나름 플렉스를 누리며 살아왔다. "여름엔 땀 좀 흘려야 건강에도 좋다", "냉방병은 더 위험하다" 같은 말로 서로를 다독이며 살았다. 땀에 절어 몇 번이고 워터밤을 반복하면서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은 걸 보면, 우리 부부는 정말 잘 만났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에어컨을 설치하고 나자 '왜 진작 이걸 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에어컨이 얼마나 시원한 물건인지는 이미 잘 알았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는 에어컨은 단순한 물건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마치 현대 문명의 정점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껏 펑펑 쓰진 않았다. 한 번 작동시키면 한 시간 이상 틀지 않았고, 선풍기와 함께 돌려서 냉기를 적절히 유지했다. 냉기가 필요 없는 방은 문을 닫아 놓고, 작은 실천으로나마 에너지를 아끼며 살았다.
그러면서 문득 과거의 선조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이 찜통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먹을 것도 부족했고, 식품 보관도 쉽지 않았으며, 질병과 무더위 속에서 하루하루가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분들의 삶이 짧고 고단했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간다.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이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그만이지만, 더우면 벗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나이를 먹으니 몸속 수분조차 간수를 못해 자꾸만 물만 들이켜게 된다.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으니 달콤한 것만 자꾸 당기고, 움직임이 적으니 다이어트도 어렵다. 물론 수영장에 가서 몸매 자랑할 일은 없으니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참으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음식 보관도 쉽고, 더위를 식힐 방법도 많으며, 더울 때마다 에어컨 버튼 한 번이면 해결되는 삶이라니 말이다.
불평보다는 감사를, 당연함보다는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야겠다.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내년 여름은 또 어떨지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렇게, 지금을 감사하며 살면 된다.
이제는 우리 집을 찾으려면, 멀리서 손가락으로 열심히 층수를 세야 한다. 한 줄에 가지런히 꽂힌 실외기들 사이에서 문명의 혜택을 비로소 받아들인 우리 집을 말이다. 여름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더 견디기 쉬워진 지금의 삶이, 새삼스럽게도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