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감탄 보고서

소리로 물든 사랑

by 사고 뭉치

나는 전생에 음향 감독이나 음악 분야 종사자였을지 모른다.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그렇다. 잠귀도 밝고, 남들이 놓치는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 농담으로 개미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할 정도다. 미팅 당시를 기억해 보면 십중팔구 상대 여성이 나를 먼저 퇴짜 놓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에 못지않게 소개 자리에 나온 여성들의 음성을 듣고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내 귀를 호강시켜 줄 사람은 영영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결혼 결심에 있어서 아내가 들려준 속삭임은 최소 70%의 지분을 차지했다. 심야에 전화기 너머로 울리는 청아한 음성은 나를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내에게도 미래 남편감의 목소리 톤 기준이 있었는지, 내 음성이 편안하다고 했다.

그런 아내의 목소리는 곧 그녀의 성격이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지 않았는지 굵어지거나 호통을 치는 사운드는 아니니 다행이다. 차분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조곤조곤한 스타일만도 아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거나 창공의 카나리아가 지저귀는 듯한 데시벨이다.

누구는 목소리가 예쁘면 정작 얼굴은 그저 그렇다고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히려 미모를 증폭시켰다. 연애 초기, 나는 단단한 콩깍지를 쓰고 말았다. 너무 예쁘게만 보여 ‘혹시 고도의 연애 전략은 아닐까’ 하고 의심할 뻔했으니 말이다.

25년이 넘는 동안 아내가 목소리 높여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나와 말다툼을 할 때도 성내는 모습은커녕 차분한 이성만이 지배하는 소유자로 비쳐졌다. ‘어쩌면 저런 평온한 성격을 지녔을까’ 하며 연구하고 싶었다. 남이 아내를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할 때도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보는 편이었다.

그런 목소리 소유자를 오랜 세월 지켜본 일상도 예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변은 항상 정갈했다. 화장대에도 꼭 필요한 몇 가지 화장품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옷장을 보면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있고, 냉장고를 열어봐도 불필요한 식재료는 이리저리 나뒹굴지 않았다. 싱크대 장을 열어봐도 그렇고. 그런 목소리 주인공의 취향들이 우리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외출할 때도 화려한 것 보다는 단정하고 조금의 예쁨만을 얹었다. 걸음걸이도 사뿐사뿐하고 손 하나는 꼭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배려와 조신함이 몸에 밴 그녀였다. 나들이를 갈 때도 숲을 좋아하고 고즈넉한 자연을 사랑했다.

오늘도 걷다가 내 앞에서 양 팔을 들고는 빙그르르 돌며 소녀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다. 이런 세월에 녹아든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어찌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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