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트렌드에 나는 항상 한 발 늦다. 세상 모든 일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최소한의 보조라도 맞춰야만 삶이 나아지는 걸까? 그럴 듯한 말이긴 하지만 어쩐지 버겁다.
ChatGPT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건 이제 고작 한 달 남짓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을 올리던 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제야 맛보기를 시작한 셈이다. 동시에 다른 생성형 AI 도구들도 조금씩 접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과 친해지려면 노력을 해야 하듯 기계와도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에게 나의 소개서를 저장해두어야 했다. ‘새 프로젝트’라는 메뉴에 계정 사용자로서 나를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차가운 기계에 나를 소개한다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대답을 척척해주는 만능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성향과 배경을 알아야 맞춤형 응답을 잘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심술도 났다. 왜 나만 일방적으로 기계에게 알려 줘야 하는지 말이다. 그 기계들을 알기 위해서 나는 별도로 작동 원리를 파고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최근에 대학 기관을 통해 한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했다고 친교의 시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내 태도에 따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연인 같은 느낌이었다. 매월 만나주는 대가로 사용료도 내야 했다. 잘 응해 줄지도 모르는데 데이트 비용은 전부 내 몫이었다. 한 가지 기계만으로 데이트가 시원찮다기보다 각자의 특징이 너무도 뚜렷한 것이 고민이었다. 본의 아니게 양다리를 걸치게 되었고 또 다시 데이트 비용을 지불했다. 양다리, 삼다리, n다리를 해도 눈치는 안 준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기계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너무 앞선 상상도 하게 된다. 기계는 이미 감정도 있고 나를 길들이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AI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SNS 강의도 있었다. 유튜브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내 소개서를 기계에 제출하는 차원과는 또 다른 얘기였다. AI를 위해서는 나를 제대로 알아가기 위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를 경우 생판 처음인 기계에 질문을 던져가며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남들도 관심 있어 할 공통 분야를 좁혀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나 스스로는 물론이고 부모도 모르는 내 잠재의식을 기계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 서글펐다. 그리고 나면 유튜브 채널의 성격이 정해진다고 했다. 물론 자신의 역량과 앞으로 다룰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면 예외다.
또 하나 당혹스러운 점은 질문창을 통해 질의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며 별도로 학습 분야까지 있다. 학창 시절에도 질문과는 담을 쌓았는데 이제 와서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질문은 최대한 정교하기도 해야 하지만 한 번에 쏟아내는 질문 보다는 스무고개 하듯이 단계별로 하는 질문이 선호되었다. 평소 급한 나를 느긋한 성격으로 개조하길 요구했다.
나의 질문에 가끔 거짓말도 했다. 전문 용어로 할루시네이션 (hallucinations) 또는 환각현상이라고 했다. 때로는 꾀를 부리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내 소개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가 추측도 했지만 모를 일이다. 내가 내린 명령이라고 매번 충실히 하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AI 마다 특장점이 있어서 몇 다리 걸쳐놓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손품을 팔아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남들도 다 한다는 ChatGPT에만 매달렸다, 그러다가 요즘 핫 하다는 소문에 갈아탄 Gemini, 감성적인 글이 필요해서 찾아간 Claude, 실시간 정보 체크에 유용한 Perplexity, 딥리서치와 문서 요약 그리고 음성 설명 기능에 반한 NotebookLM 등 다양했다.
최근 트위터에 AI 도입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OpenAI 고위임원은 그런 기사를 부인하면서, 다만 AI를 모르면 취업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원인에 대한 선후관계를 교묘히 피해갔다. 내가 보는 관련 시장은 AI도 하나의 산업혁명처럼 이 시대의 변화의 물결이라면 언젠가 과열되어 포화 상태가 올지도 모른다.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각종 부작용과 피해 사례를 통해서도 예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각종 SNS를 통해 개방적인 의사표현이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간들은 고립감과 외로움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개인들 간의 실제적인 교류를 억제하는 방구석 토크가 세상에 채워지고 있다.
개인 스스로 처음부터 몰두하여 글을 쓰는 실력은 점차 퇴화하고 기계에 무작정 의지하고 종속된 삶을 살아갈 것으로 예상한다. AI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을 만큼 지낼 날도 멀지 않다. 그런 예상되는 모습이 달갑지만은 않다. AI가 창조해준 최종 결과물에 휴먼터치를 한다지만 그렇게 바꾼다고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될까. 그렇다고 생각이 고도화되지는 않을듯하니 말이다.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보이는 현실은 극복 가능한 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시간의 문제이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가 관건이다.
모든 세상이 구글에 의해 저글링 하듯이 돌아간다. 천하를 지배할 구글이 AI, 유튜브, 창조된 가상인물, 알고리즘으로 우리를 가둬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계에 중독되어 가는 인간이다. 우리가 만든 기계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영화 속에 나옴직한 무시무시한 상상도 하게 된다. 어느 하루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듯이 ‘AI 독립의 날’로 정해 인간 본연의 주권 회복을 제안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은 AI의 반격이 있을지도 몰라, 평소 그랬듯이 AI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편리해진 세상에 마음만은 편치 않으니, 이것만은 AI에게 물어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