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선물

by 사고 뭉치

지난 열흘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금방 마무리 될 줄 알았다. 잠시의 불편쯤은 감내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예상을 넘어가자 불안까지 더해진 여진이 나를 흔들었다. 평소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 곁의 공기가 사라진다면’ 하고 상상할 때 느껴지는 위기와 비교되었다. 다름 아닌 차량 네비게이션 얘기다. 십 수 년 동안 차량의 이런 기능 없이 운전은 어떻게 했단 말인가.

지난 20년간 영업직으로 일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외근을 할 때, 보조석엔 두툼한 지도책이 있었다. 게다가 방문할 업체가 팩스로 보낸 약도가 곁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적도 많았다. 상대방의 설명을 허겁지겁 받아 적고 접었다 펼쳤다 해서 약도는 지저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네비게이션을 개발한 사람에게는 노벨상을 주고 싶을 만큼 영업인에게는 단비와도 같았다.

그런데 열흘 전 갑자기 차량의 네비게이션과 어라운드 뷰, 오디오 조작 화면이 꺼져서 다시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핸들만 잡으면 마음이 놓였던 내 머리는 멈춰버린 것 같았다.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지금은 그 첨단 기능에 얼마나 의존하며 살았던가를 실감했다.

수리 예약은 했지만 접수 일자가 한참 뒤라 답답한 마음에 센터로 향했다. 그러나 부품 재고가 없어서 아마 일주일 이상 걸릴 것 같다고 하자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수리가 될 줄 알았던 마음이 거절당하자 매일 매일의 운전이 불안하기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외근을 다닐 때는 평소 익숙하지 않은 스마트 폰의 낯선 음성 안내에 의지해야 했다. 기계음이 알려주는 단축 경로가 왠지 더 멀게 느껴졌다. 작은 화면을 힐끔거리느라 운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수리를 받을 때까지는 흡사 하루가 열흘처럼 흘러갔다.

학수고대하던 일주일이 지났다. 수리 센터 엔지니어의 대답은 순간 브레이크 없는 불안감으로 밀려왔다. 부품 2개는 확보를 했는데, 의심이 되는 다른 쪽의 보드 부품은 또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수리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부품은 센터에 비축되어 있지 않았다고도 했다. 요청이 있을 때 비로소 생산한다는 것이다. 지금 부품만으로 수리가 될 수도 있지만, 실패한다면 차량을 다시 입고시켜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순간 허무했다.

그나마 하루 종일 외근을 다니던 시절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부품이 확보되고 수리가 될 때쯤에는 예전 방식으로 또 다시 적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마 그런 일은 없을 듯했다. 익숙해질 대로 편리해진 방식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네비게이션 수리로 평소 당연시 하는 편안함은 또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상당히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을 듯했다. 입고 먹고 누리는 모든 것이 그럴 것이다. 내게 허락된 것을 당연시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때론 참는 것도 배워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더하기나 곱하기로 최대한 마음껏 누리려고만 하지 말고, 빼거나 나눠서 조금은 부족한 듯이 사는 방식도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 수리는 반드시 해야만 했다. 안전과 편의가 공존하는 기능이라 그렇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수리가 완료되었다. 화면이 정상으로 작동되니 마음속 먹구름이 걷혔다. 내 삶의 길도 훤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온 편리함 앞에서 이 열흘간의 불편했던 시간을 기억해야겠다. 내 삶의 모든 익숙함에 진정한 평안과 감사를 느낄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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