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기가 오늘따라 조용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물 끓는 소리도 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야 했다. 뭔가 이상했다. 타이머도 제대로 맞췄고, 전원도 켰는데 말이다. 식사를 하다말고 슬며시 일어나 스위치를 확인하고, 플러그도 꽂혔는지 다시 들여다봤다. 몇 번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지만 여전히 기미가 없었다.
콘센트 주변을 확인한 순간,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찜기 옆에 있던 커피포트의 플러그를 아무 생각 없이 꽂아놓고선 그게 찜기인 줄 알고 애꿎은 기계를 들었다 놨다 한 것이었다. 전선의 굵기나 플러그 모양이 엇비슷하다 보니 늘 헷갈렸다. 계란을 삶든, 커피 물을 끓이든 매번 불편한 사전 확인을 되풀이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은 실수는 처음이었다.
“이젠 안 되겠다.”
바쁜 아침, 결심한 김에 팔을 걷어붙였다. 매번 "나 찾아봐라."놀리던 이 두 가닥의 전선을 오늘부로 정리하기로 했다. 오랜 시간 무던히 참아온 성격에도 한계는 있었다.
라벨 프린터기를 꺼냈다. ‘계란찜기’, ‘커피포트’ 스티커를 큼직한 글씨로 출력해 플러그 헤드에 붙였다. 노안도 이젠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 글씨 크기도 눈에 띄게 키웠다. 그렇게 이름표를 달아주고 나니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었다. 옆에서 보던 아내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뭐가 그리 어렵다고, 진작 이렇게 할 걸.”
살다 보면 이렇게 사소한 불편함을 방치할 때가 많다.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괜찮겠지’ 하는 관성에 기대어 넘겨버린다. 나도 그렇다. 요즘은 예전만 못한 내가 가끔 낯설지만, 그게 또 인간미라는 생각에 미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집 안을 둘러보면 손대야 할 것들이 꽤 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일들인데도, 게으름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그 환경에 무뎌지고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불편함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일 아침부터는 계란과 커피를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플러그를 꽂으며, 오늘의 소소한 결심을 떠올릴 테다. 때론 삶이란, 그런 작은 실천 하나에서 달라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기기를 다 쓰고 나면 반드시 플러그를 뽑는다. 전기 절약과 화재 예방 차원이다. 이건 절대 미루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꼼꼼함의 기준’은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