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찔끔 날만큼 얼음장 같이 시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어둠 속에서 시계를 쳐다보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의미인즉 작전을 펼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심야의 겨울 바람이란 살갗을 스치기만 해도 아려왔다. 하지만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동장군의 위세는 무시해야만 했다. 아니, 기꺼이 참을 수 있다고 최면을 걸기로 했다.
우리의 작전명은 ‘꼭두확 (꼭내두눈으로확인하고야말리라)’이었다. 경비원의 감시가 소홀해지는 틈을 최대한 노리고 있었다. 현장 인부들도 대부분 퇴근을 하고 관리인이 컨테이너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빈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몇 개월 후 입주할 아파트 공사 현장 인근에 잠복 중이었다. 건물은 최고 층수까지 골조 공사가 완료된 상태였다. 우리 힘으로 마련한 새 아파트는 평소 우리 대화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운이 좋아서 동호수가 좋은 곳에 당첨되었는데, 그 조망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나도 컸다. 한 층 한 층 건물이 올라갈수록 입주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공사장 주변을 현장소장 만큼이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벌벌 떨면서 눈치를 보다가 드디어 단지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요즘 같이 삼엄하고 철저한 보안 체계라면 이런 작전 수행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우리가 입주할 맨 앞 동 공동현관을 어둠속에서 헤매다가 찾아냈다. 현장은 아직도 공사 자재와 기계들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숨을 죽이며 처음 가는 낯선 곳을 어둠 속에서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만큼이나 설렘을 가득 안고 전진했다. 여기서 발각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드디어 1층 현관에 도달했다. 인류가 달에 발을 디뎠을 때만큼이나 벅찼다. 하지만 이제 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혹시나 발각될까 전등도 켜지 않고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가야 했다. 계단 곳곳에는 발에 체이는 자재들로 널부러져 있었다. 당연히 엘베도 없고 층마다 창호 설치도 아직이다 보니 고도가 올라 갈수록 땀도 나는 동시에 세찬 바람까지 강도를 더해갔다. 위험천만한 등반이었다. 야간 산행과 흡사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허위허위 손과 발로 더듬어가며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갔다. 몇 번은 발에 자재가 걸려 ‘쨍그렁’ 하는 소리에 놀라 등골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우리집 15층에 올라섰다. 우리는 “와”하며 숨죽여 작은 환호를 질렀다.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남산과 도심 야경이 우리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뒤로는 안산이 펼쳐졌다. 추위로 얼얼한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빙빙 돌았다가 만세삼창도 했다. 훤히 뚫린 사방으로 모진 바람이 들어오는데, 그 순간만큼은 마치 보드카 한 병쯤은 마신 것처럼 온몸에 짜릿한 열기가 돌았다. 한참을 야경에 집중하면서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을 눈에 가득 담고 카메라에도 담았다.
고층에서 몰아치는 찬바람만큼이나 지난 3년간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나도 혹독했다. 아파트 장만을 하느라 켜켜이 쌓인 여러 기억들이 슬라이드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 순갼 아내도 그랬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중도금에 대한 부담을 덜려고 수없는 계단으로 이어진 달동네 맨 윗부분에 자리 잡은 오래된 빌라의 꼭대기 층을 전세로 얻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했던 아랫동네 8,000만원 전셋집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지만, 도대체 그 돈이라는 게 뭔지 우리는 동네에서도 제일 저렴하다는 4,500만원 짜리에 도장을 찍고야 말았다.
주차장이 없어서 인근 동네에 차를 대고 하염없이 걸어와야만 했다. 양손에 가방과 장본 것을 들고 한참을 걸어오다가 비에 쫄딱 젖었던 일, 결혼기념일 전날 하필이면 집에 도둑이 들어 여권이 없어서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던 외국 출장도 가지 못했던 일, 이사하던 날 동네 골목이 너무 좁아 사다리차가 전복될 뻔한 일, 단열이 되지 않아서 더위와 추위 그리고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던 일, 방에 벌레가 자주 출몰하고 하수구 냄새로 골치가 아프던 일, 창문이라고 3개 있는데, 손을 뻗으면 바로 옆집에 닿을 정도 였던 것 등. 다시금 회상하다 보니 눈가가 촉촉해 지려 한다.
아쉽지만 아파트에서 걸어 내려올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아내와 손을 맞잡았다. 추위를 헤치고 위험천만한 장애물을 넘어서 어둠속을 걸어가던 모습이 마치 우리가 살아온 삶과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런 고비에 넘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시간이 흘러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하늘에서는 서설이 내려 우리를 축복해 주었다. 소담스럽게 나리는 눈이었다. 지난 세월을 헤쳐온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당당히 베란다에서 하얗게 바뀌는 세상 속에 우뚝 선 남산 타워를 바라보았다. 남산은 알 것이다. 2007년 그날 밤 우리가 느꼈던 벅찬 감동과 지금까지 이어진 행복의 여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