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아래 낭만

by 사고 뭉치

창문을 열고 손을 뻗어보니 미스트를 뿌리듯 손등을 간질였다.


어둑한 아침이다. 하늘 빛깔을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우산을 챙기기로 했다. 이내 또 다른 고민이 스쳤다. 헬스장에 갈 수도 있으니 보관함 열쇠를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공동 현관을 나서니 조금 전 느꼈던 미스트는 온데간데없이, 우산이 필요할 정도로 그 잠깐 사이에 빗줄기로 바뀌었다.


받쳐 든 우산 위로 떨어지며 “타닥”거리는 빗방울이 리드미컬한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아늑하게 우리를 감싸 안은 우산이 나란히 걷는 아내의 말소리를 모아주어 내 귀에 공명시켜 준다. 헬스장을 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어느새 희박해졌고, 비 내리는 반주 소리를 들으며 걷는 낭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내를 잘 알고 있는 나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물론 나도 그걸 원했으니까.


닫힌 공간에서 러닝머신을 하느니, 시원스레 몸으로 파고드는 바람결, 비가 뿌려대는 향취, 땅에서 올라오는 진한 흙 내음, 빗방울이 마지막으로 거쳐 갈 휴식처를 잠시 내어준 잎사귀, 각종 오감의 마법사를 체감하는 이 순간이 놓치기엔 아깝다. 바짓단이 좀 적셔지고, 들이치는 비바람으로 앞섶이 좀 젖어도 좋은 산책길. 우산을 든 팔도 저려서 자주 바꾸어야 하지만 그마저도 왜 이리도 좋은지.


"비 오니까 더 좋다, 그치?"하는 아내의 재잘댐까지 빗소리에 실려 더욱 또렷하게 내 마음에 다가온다. 빗소리에 마음이 젖던 아침, 그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그 아침, 우산 아래 낭만이 모든 하루를 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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