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번째 일기, 어제와 오늘 사이

by 사고 뭉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평소와 달리 아쉽게 마무리한 어제의 나를 발견했다. 겨우 네 줄 적힌 일기장이 마치 나를 비웃는 듯이 보였다. 적어도 어제만큼은 어제를 온전히 담을 기운조차 없었다. 술이 아닌 쏟아지는 잠에 취해 글씨체는 평소 나답지 않게 갈짓자 횡보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짧은 몇 줄조차도 횡설수설하는 통에 누가 볼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선정됐다는 자랑스러운 소식만큼은 졸음 속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속내가 비치는 어투에 보는 내가 다 오글거릴 지경이었다. 초등학생이 봐도 웃을 만큼 민망한 수준이었다. 어제를 이어 나가려고 새벽녘에 잠의 숙취를 가다듬고 머릿속 어제를 뒤적여 보았다.


나는 매번 일기 앞에 번호를 매긴다. 6월 26일, 어제는 딱 700번째 기록이었다. 내 삶의 하루하루를 담아낸 이 얇아진 노트도 뒷장을 넘겨보니 이제 고작 다섯 장만 남아 있었다. 그동안 나를 담아냈던 이 노트와의 작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가 아닌 오늘은 6월 27일이니 하루를 놓치는 게으름만 아니라면 이 노트는 6월 30일까지 나의 생각과 행적을 담을 것이다. 나는 하루를 한 페이지에 담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흥에 넘쳐 생각이 춤을 추고 또 그것을 손가락이 신들린 듯이 받아 줄 때면 두 장을 넘긴 적도 많았다.


맨 마지막 페이지 한 장은 꼭 남기고 있다. 예전 담임 선생님이 그랬듯이 언젠가 이 한권을 다시 읽고 소감을 적기 위해서다. 만약 10년 뒤 내 일기장을 선생님께 검사받듯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 또한 얼마나 재미있을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앞뒤 너무 여유 없이 빽빽하기만 한 글의 무게를 이 노트에 얹기 싫어서다. 살짝 글발이 딸릴 때는 이런 합리화가 나쁘지만도 않다.


하루를 살아도 일기의 흔적이 없다면 나의 하루는 공중 분해되는 느낌이라 소중히 이 종이에 박제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쓸 얘기가 하도 없어서 글 옆에는 그림이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져서 폰트는 11에서 9만큼 작아지고 자간도 좁아졌으며 어설픈 그림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제나 어제와 비슷한 얘기를 복사기처럼 오늘도 쓰는 것이 싫어서 생활의 활기를 찾고자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궁리하다 보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재미와 보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주변을 관찰하고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상반기만큼이나 이 노트의 마지막 여백에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그래야 조금은 다른 하반기 7월을 새 노트에서 맞이하게 될 테니까. 다시 펜을 든다. 어제의 이야기를 마저 꺼내고, 오늘이라는 새 페이지를 아름답게 채우기 위해. ( 2025년 6월 27일 일기에서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를 만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