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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Sep 18. 2023

무적의 깍두기

  동네에서 가장 높은 느티나무 아래에는 커다란 평상이 있었다. 20여 년 전 통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신 장 씨 아저씨께서 놓으신 거라는 둥, 빨간 대문 집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있었으니 30년은 넘은 평상이라는 둥, 말은 많았지만 동네 사람 그 누구도 정확히 언제부터 평상이 거기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평상 옆에는 슈퍼가 있었는데 슈퍼 아저씨가 평상을 관리했다. 작은 상도 놓고 방석도 몇 개 갖다 놓고 못질도 자주 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평상에 모여들어 바둑도 두고 윷놀이도 했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을 마루 끝에 휙 던지고 뛰어나와 약속이나 한 듯 모이는 곳이었다. 그곳엔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면 닦아주고, 집에 업어서 데려다주는 어른들이 항상 있었다. 동네 사람 모두가 내 집, 남의 집 아이 구별 없이 모든 아이들을 돌보았고, 야단쳤고, 간식을 챙겨줬다. 


  나도 평상에 모이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때 우리들은 줄넘기 놀이, 구슬치기, 다방구, 쌀보리, 땅따먹기, 딱지치기, 자치기, 비사치기, 실뜨기, 공기놀이 등을 했다. 벌써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한 중학생 오빠들은 평상에 앉아 오목을 두기도 했다. 놀이의 절정은 바로 <오징어 가위상>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오징어 게임을 부르는 말이었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가로등이 희미하게 빛나면 오빠들은 주머니에서 분필을 꺼내 흙바닥 공터에 오징어 모양을 그렸다. 분필을 잊고 온 날이면 운동화 신은 발을 옆으로 세워 운동화 옆 날로 줄을 그어 그렸다. 오징어 게임 놀이에 열중하다 아이들의 숨이 거칠어지고 가로등 불빛이 밝게 빛나면 승리팀과 패배팀이 갈렸다. “ㅇㅇ아. 밥 먹어라!”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멋지게 승부를 낸 아이들은 그날의 승리에 환호하며, 또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기약했다.


  나는 생일이 빨라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다. 그래서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몸집도 작고 달리기도 느리고 힘도 약했다. 날마다 평상 옆 공터에서 하는 놀이에 불리한 점은 혼자 다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놀이에 끼지 못해서 속상했던 기억은 없다. 그땐 ‘깍두기’가 있었다. 깍두기는 편을 가르다가 남은 사람인데 술래가 잡아도 죽지 않고 계속 놀 수 있었다. 깍두기는 놀이에서 여러 역할을 했다. 나는 특히 다방구에서 술래에게 붙잡혀 전봇대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툭’ 쳐서 탈출시켜 주는 일이 좋았다. 자치기에선 한 번 더 쳐서 추가 점수를 낼 수 있었고 구슬치기에선 구슬이 원 안에 들어갔는지 심판 노릇도 했다. 놀이의 하이라이트인 오징어 게임이 시작되면 나는 공터 앞 평상에 올라서서 구경만 했다. 오징어 게임은 놀이의 속도가 빠르고 때론 몸싸움으로 격렬해지기도 해서 끼어들기가 무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들이 혼자서 구경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빠들은 나를 오징어 목 부분에 세우고 이렇게 선포했다. “이제부터 너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무적의 깍두기’야!” 오빠들이 새로 정해준 규칙에 의하면 나를 살짝이라도 건드리는 아이들은 무조건 탈락이 되었다. 그러니 이기고 싶은 아이라면 나를 살살 돌아가거나 오징어 몸통과 머리를 크게 뛰어넘거나 해야 했다. 그래야 오징어 머리끝의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무적의 깍두기가 되어 오징어 게임을 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매일 난 무적의 깍두기로 변신하여 얼굴이 발갛게 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깍두기’는 정말 좋았다. 좀 부족해도 좀 느려도 함께 놀 수 있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놀면서 동시에 보살핌도 받았다. 놀이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 문화였다. 학교 폭력과 왕따 문화에 대한 흉흉한 기사가 신문 사회면을 가득 채우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도 ‘깍두기’를 알까? 머니투데이의 기획기사 [놀이가 미래다]에서 정선아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신나게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고무줄놀이도 하고, 깍두기도 해보고 싶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환경이 안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놀 장소도 없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우리 아이들에게 깍두기 문화를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무리한 욕심이겠지. 


  골목길에서,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듣고 싶다. 뛰어놀다 보면 예전 ‘깍두기’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놀이하면서 서로를 보살피고 챙겨주는 공동체 문화를 반드시 부활시킬 것이다. 세계 최고의 놀이 전문가는 어른들도, 선생님도 아닌 바로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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