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하던 삼중당 문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 장정일 [삼중당 문고]
중학교 때부터 나는 삼중당 문고를 즐겨 읽었다. 장정일 시인의 시절엔 150원이었지만 내가 중학교 땐 한 권에 3~4백 원이었다. 한 달 용돈이 5천 원이었는데 학교 준비물도 사고 군것질도 하고 나면 늘 책 살 돈이 부족했다. 그때 마침내 앞에 할아버지의 헌책방이 나타났다.
그날은 아침에 맑더니 점심때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잠시 그칠 듯하다가 하교할 때가 되니 다시 비가 시작됐다. 우산이 없어서 가방을 머리 위로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갔다. 정류장에서 단짝 친구랑 눈이 마주쳤다. “우리 걸을래? 비 맞으면서?” 친구가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말했다. 무모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는 집까지 비를 맞고 걸어가기로 했다.
초여름의 비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집까지 반쯤 걸어갔을 때 비가 더 거세졌다. 도저히 걸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따뜻해 보이는 노오란 전등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는 가게로 비를 피하러 들어갔다. 빗물에 젖은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바닥에서부터 두꺼운 서까래가 지붕을 이고 있는 천장까지 온통 책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가 여러 개 나 있었다. 정면 통로 끝에 조그만 방이 있었는데 주인장 할아버지는 그곳에 앉아 물기를 뿌려대는 우리들을 못마땅한 듯 노려보았다. 그 눈길에 주눅이 든 우리는 어색하게 문 앞에 서 있다가 그대로 뒤로 돌아 가게를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들려온 할아버지의 목소리! “그러다 감기 걸려! 이리 와서 코코아 마셔!” 친구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코코아요? 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할아버지가 꺼내 주신 수건으로 젖은 머리와 가방을 닦고 나니 책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와 둘이 미로 같은 책방 통로를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했다. 서로 다른 통로로 들어가게 되면 키보다 높이 쌓여 있는 책들 때문에 친구 목소리는 들리는데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통로를 돌아다니다 삼중당 문고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해적 검은 수염의 보물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부터 할아버지의 헌책방은 하굣길에 꼭 들르는 우리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는 패션 잡지나 만화 잡지를 보며 열광했고 나는 삼중당 문고본이 쌓여 있는 책 탑을 파고들었다. 어리석어서 서글픈 사랑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 썰매개 벅의 생존기 [황야의 부름], 권태로운 삶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표본실의 청개구리],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할아버지의 헌책방을 통해 만나봤던 위대한 작품들이다. 할아버지는 라면을 끓여 주시기도 하고 방안 난로에서 구운 군밤도 나눠 주셨다. 상태가 좋은 삼중당 문고가 들어오면 한 옆에 여퉈 놨다가 쓱 내어 주시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책방에서 미카엘 엔데의 [모모]를 만났다. 그 책에 나오는 지혜로운 시간의 수호자 '호라 박사'가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땐 청계천에 즐비했던 헌책방을 누비며 책을 읽었다. 책방 주인아저씨들은 돈 없는 대학생이 한 옆에 서서 몇 시간씩 책을 읽고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아직도 10여 군데가 남아있어 서울에 갈 때면 꼭 들르고 있다. 절판되어 시중에 없는 책들을 애써 찾아 주시는 책방 주인아저씨들이 너무 고맙다. 부산에는 보수동 책방 골목이 있다. 서점마다 다루는 책의 종류가 전문화되어 있어 책을 고르기가 편하다. 인천에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다. 과거엔 50여 개나 있었다는데, 지금은 5개만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사는 사람은 적다. 대부분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간다. 도서정가제 도입, 인터넷 서점의 등장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헌책방. 어느 곳 할 것 없이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어 동네 헌책방들이 언제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동영상으로 책의 줄거리를 만나고 오디오 북이나 e북으로 책을 보는 세상이니 깨알 같은 글씨로 인쇄된 낡은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달콤한 코코아 향기가 풍기고 이런저런 책들을 권해주는 주인장이 있는 헌책방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