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원적산을 매일 걸었다. 비나 눈이 오면 우비를 입고 우리 집 강아지 네모를 꽁꽁 감싸 안고 산 밑의 공원을 걸었다. 매일 걷는 길은 항상 같았고 또 매번 달랐다. 그렇게 매일 걸으며 울 아들의 고교시절을 보냈다.
무저갱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듯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간 아들은 몹시 힘겨워했다. 코로나 기간을 보내며 기숙사에서 눈뜰 때부터 잠이 들 때까지 항상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했다. 아들은 몹시 숨 막혀했다. 급기야 아들은 심각하게 자퇴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집에서 통학을 하게 했다. 아들의 숨통은 트였으나 그날부터 나의 귀양생활은 시작되었다. 아들이 등교하고 나면 저녁 먹으러 돌아오는 시간까지 난 혼자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동네. 말벌 집에 잘못 날아든 꿀벌 같은 존재. 나는 외부인이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원적산이 있었다. 네모와 같이 처음 가 본 산 아래 공원에는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있었다. 그 몽글한 모습이 포근해서 좋았다. 그날부터 마치 의식을 치르듯 아들의 학교생활이 무사하길 빌며 매일 그 공원을 걸었다.
어느 날 네모가 갑자기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낯선 오솔길로 나를 끌어당겼다. 조금 경사가 진 비탈길이 나타났다. 너무나 열심히 열광적으로 멧돼지같이 킁킁거리는 콧소리까지 내며 비탈길을 올라가는 네모를 따라가다 보니 경사가 급해졌다. 오르막이 너무 급해서 네모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숨이 찼다.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네모는 힘들지도 않은지 앞장서서 팽팽하게 목줄을 당겨댔다. 10여분 정도가 흘렀을까, 갑자기 눈앞이 탁 트였다. 정상에 도달한 것이었다. 하늘을 이고 있는 산마루에 올라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심호흡도 여러 번 했다.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껌처럼 떼어낼 수 없던 아들걱정이 한순간에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몸도 마음도 산뜻했다. 모든 것이 보물단지 네모 덕이었다. 네모는 이럴 줄 알고 이 오르기 싫은 비탈길로 날 끄잡아 올렸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기쁨이었다. 그 가파른 오솔길에서 산비둘기 부부가 빨간 열매를 서로에게 먹여주고 있는 것도 보았고 청설모가 도토리를 줍는 모습도 보았다. 박새와 직박구리, 또 이름 모를 새들도 여럿 만났다. 산책길은 여러 갈래로 나있어서 여기저기 모퉁이마다 새로이 만나는 풀꽃들이 소중했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매일 오르니 힘들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산둘레를 빙글빙글 돌아 천천히 내려오는 길을 골랐다. 가을이면 밤송이가 지천이었다. 네모가 가시에 찔릴까 봐 품에 안고 걸으면 밤나무는 후드득하고 밤송이를 내 머리 위에 떨어뜨렸다. 산에 갔다 오면 힘들어하는 아이를 다독여줄 넓은 마음이 자라났다. 하루치의 마음, 하루치의 힘. 힘겨운 시절을 함께 걸어준 원적산 산책길. 그렇게 난 매일 원적산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