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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Dec 08. 2024

복권방과 그림 공방

은퇴 후의 삶을 그리며우리 부부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복권방이랑 그림 공방을 나란히 열면 어떨까?” 말만 꺼내도 서로 웃음이 난다화려하진 않지만우리가 함께 꿈꾸는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이다.

남편은 복권방을 좋아한다간단한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님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상상을 한다. “복권이야 한 장에 얼마 되겠어하지만 사람들에게 꿈을 판다는 건 멋진 일이잖아.” 그는 말끝에 늘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혹시 알아우리 가게에서 누군가 1등 당첨이 될지!”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왠지 그 복권방 앞에 작은 희망의 불빛이 환히 켜질 것만 같다.

복권방 옆에는 나의 그림 공방이 있다문을 열고 들어오면 달콤한 코코아 향기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손때 묻은 나무 테이블 위엔 물감과 붓스케치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고창가에는 직접 뜨개질한 커튼이 부드럽게 흔들린다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나의 오랜 꿈이다누군가는 스케치북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누군가는 손뜨개로 조용히 무언가를 엮어낸다.

저녁이 되면 작은 독서 모임도 열릴 것이다책 한 권을 앞에 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가끔은 남편이 복권방 일을 마치고 코코아 두 잔을 들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여기서도 꿈을 이야기하네복권방에서처럼.” 그가 장난스럽게 말하면모두가 웃음으로 화답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며 하루를 함께 채운다남편은 내 공방 창가에 놓인 물감을 만지작거리고나는 그의 복권방에 앉아 손님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복권방은 희망의 공간이고그림 공방은 치유의 공간이다두 공간이 나란히 있다는 건마치 꿈과 현실이 어우러지는 삶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직은 이 모든 것이 꿈이지만가끔 우리 둘만의 미래를 상상하는 건 삶에 작은 기쁨을 준다하루의 끝우리는 작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당신 복권방에는 어떤 손님이 올까?” “당신 그림 공방에서는 무슨 작품이 만들어질까?” 그런 상상이 가끔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그 복권방과 그림 공방이 언젠가 정말로 생긴다면우리는 아마도 꽤 만족스러운 노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손님이 많아 바쁜 날도조용히 서로의 공간에 앉아 있는 날도 모두 행복할 것이다그리고 이 꿈이 그저 상상에 그치더라도 괜찮다우리가 함께 꿈꾼다는 사실만으로도우리의 지금은 적당히 따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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