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둘기 부부는 맨날 뽀뽀해

by 김제니

새로 이사한 아파트 단지엔 나무가 정말 많다. 원적산도 가까워 새들이 끊임없이 날아든다. 아침마다 들리는 새소리에 눈을 뜨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해만 뜨면 매일 “야!”하고 우는 새도 있다. 짧고 굵게 “야!”하고 운다. 남편은 “왜!”하고 대답한다. “야!” “왜!” “야!” “왜!” ‘야새’(내가 새에게 붙인 별명)는 초록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대화가 제법 이어진다.


집 앞 나무에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산비둘기 한 쌍이다. 처음 보던 날 아빠 산비둘기가 엄마 산비둘기에게 빨간 열매를 먹여주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먹는 모습을 너무나 사랑하는 눈길로 쳐다봤다. 열매를 다 먹은 엄마 산비둘기는 열매를 가져다준 아빠 산비둘기의 부리에 제 부리를 비벼댔다. 뽀뽀를 한참 하고 난 후 고개를 아빠 산비둘기의 가슴팍에 기대며 골골 소리를 내었다. 눈도 살포시 감고서. “쟤네 가족 맞나? 가족끼리 왜 저래?” 나의 말에 남편이 웃었다.


아침마다 난 빨래를 걷는 척하며 산비둘기 부부의 일상을 본다. 사나운 까치가 세 마리나 덤벼들어도 다부진 눈매의 아빠 산비둘기는 열심히 물리친다. 아빠가 물리치는 동안 엄마 산비둘기는 나뭇가지 뒤에 잘 숨겨놓은 둥지를 보듬는다. 내가 보고 있으면 아빠 산비둘기가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이며 내 눈길을 끈다. 가지에서 가지로 옮겨가며 퍼드덕 퍼드덕 일부러 요란하게 날갯짓을 한다. 그래도 내가 엄마 산비둘기 쪽을 보고 있으면 “꾸룩꾸루룩”하고 소리 내어 자길 보라 호통을 친다. “이봐, 난 빨래만 걷으면 들어갈 거야. 너희 둥지나 네 짝에겐 관심이 없다니까.”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면 걱정이 되어 베란다를 들락날락한다. 남편도 걱정이 되는지 퇴근하면 베란다 불을 켜고 산비둘기 부부의 안부부터 살핀다. “비 때문에 둥지 다 망가지는 거 아니야?” “어! 비 그치니까 소리 들린다. 이거 산비둘기 우는 소리 맞지?”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산비둘기 부부는 오늘도 여전히 다정하고 활기차다. 아빠 산비둘기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해오고 까치가 달려들면 용감하게 쫓아낸다. 엄마 산비둘기는 그런 아빠 산비둘기를 걱정해서 “구구”소리를 내며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면 서로 부리를 비벼대는 것으로 무사귀환을 자축한다. 나뭇가지 끝에 나란히 앉아 아빠는 늠름하게 가슴팍을 내어주고 엄마는 얌전히 기댄다. 오늘의 행복에 감사한다는 듯 서로 살포시 눈을 감고.


아이가 다 크고 나니 남편이 낯설어졌다. 부부간에 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서로 데면데면하고 익숙한 존재. 식사메뉴 이야기할 때나 활기 찬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이. 매일 보는 사이지만 상대방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게 당연해졌다. 어쩌다가 물어보면 아프다, 피곤하단 소리에 서로 짜증이 났다. “어이구, 내가 참아야지. 가족이니까.” 그냥저냥 그렇게, 각자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산비둘기 부부를 알게 된 후 우리 부부는 조금 정겨워졌고 서로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먼저 호칭부터 바뀌었다. 내가 “나를 위해 새벽마다 전쟁터로 돈 벌러 나가는 자기야.”하고 부르면 남편이 “어제도 내 티셔츠를 깔끔하게 빨래해 준 자기야.”한다. 주말에 뭘 하고 싶은지, 요즘 영화는 어떤 게 보고 싶은지 화제를 짜내어 말을 섞는다. 병풍 보듯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지 않고 인생의 친구로 다시 한번 가까워지기 위해 마음을 쓴다. 산비둘기 부부가 가족끼린 그래야 한다고 매일매일 일깨워주고 있으니까.


우유 얼려 놓았는데 연유랑 단팥 얹어줄까?”하고 물으니 “좋아! 자기만큼 달달한 우유빙수 먹을래.”한다. 아직 내외하는 관계라 산비둘기 부부 같은 닭살행각은 엄두도 못 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남편과 평생 친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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