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런 날이 있다. 온몸을 아무리 작게 뭉쳐 보아도 찌그러진 내 마음이 그보다 더 작게 옹송그려지는 날. 사람들에 너무 치여서, 문득 내 얼굴에 맺히는 아무 의미 없는 시선으로도 나의 존재가 개미처럼 작아져버리는 그런 날. "살다 보면 괜찮다, 괜찮아진다." 하고 자꾸 되뇌어보아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매운 떡볶이라도 먹어야 할까. 그런 날에는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구겨진 마음을 바로 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달팽이처럼 껍질 속에 몸을 감추고 눈을 감아버린다.
그때 우리 집 강아지 네모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오더니 제 소중한 앞발을 내민다. '손'을 주는 재롱을 떤다. '손'을 잡아주니 꼬리를 흔들며 뱅글뱅글 돈다. 산책 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무거워진 나의 몸과 마음을 싸잡아내어 집 밖으로 옮긴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환하다.
한 걸음씩 걷다 보니 땀이 흐른다. 땀방울 하나에 씻겨 가는 걱정 한 조각, 땀방울 하나에 녹아버리는 마음 한구석의 그늘. 걸음마다 도장처럼 남겨지는, 날 무겁게 했던 잡념들. 길모퉁이에 버리고 오니 나 자신이 한결 가벼워졌다. 네모와 함께 걷는 이 길이 꿉꿉했던 나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네모가 나의 눈물방울을 닦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