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방에 딸린 부엌은 내가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부엌 한가운데 뜬금없이 서 있는 네모난 기둥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밤마다 그 구멍에서 시궁쥐들이 튀어나와 부엌 바닥을 뛰어다녔다. 쥐 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 시절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쥐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느 날 불을 내서 이 집을 전부 태워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더 괴롭혔다.
어느 날 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아버지가 부엌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잠이 든 채로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파란 불꽃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숨을 멈춘 채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빠.” 아버지를 갑자기 깨우면 놀라 울기 시작할까 봐, 나는 조용히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를 달래어 방에 데리고 가 눕혔다. 연고를 가져다 아버지의 부풀어 오른 손바닥에 바르며 생각했다. 이러다 진짜 불이 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진짜로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주인아주머니는 간밤에 아버지가 불을 낼 뻔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양말이나 행주를 안 태웠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네 아버지 때문에 집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했지만,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라 쫓아내지 못하겠다며 밤마다 아버지를 잘 지키라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의자를 방문 앞에 놓고 거기에 앉아서 잤다. 잠결에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 아버지가 그 틈으로 문을 밀고 나왔다. 아버지는 잠이 든 채로 걸어 나와 또 가스 불을 켰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아버지의 삶은 산산이 부서졌다. 사업체가 망하고, 집도 빚잔치에 날아가 버리자, 아버지는 자신 속으로 깊이 숨어버렸다. 깨어 있는 시간엔 어디선가 술을 구해 마셨고, 잠들면 집안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죽고 싶어 했다. 결국 방문에 자물쇠를 달았다. 방에는 부드럽고 안전한 것들만 남겨두고, 나머지 물건들은 시궁쥐들이 뛰어다니는 부엌으로 옮겼다. 학교에서 돌아와 자물쇠를 풀면, 아버지는 화장실로 황급히 뛰어들었다.
늘 안녕을 바랐다. 안전한 집, 평화로운 마음. 그래서 내 안에 높은 성벽을 쌓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 누구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 무엇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려고. 하지만 살아가며 깨달은 게 있다. 나만 안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안녕'을 소망하며 살아간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만날 때 "안녕하세요"라 말하고, 헤어질 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 것 아닐까. 나도 이제 내 마음속 성벽을 조금씩 낮춰본다. 모두의 안녕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