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니 Aug 22. 2023

온도의 지배자

“엄마가 온도의 지배자야? 왜 에어컨은 엄마 맘대로만 해?”


난 에어컨 리모컨을 숨겨 놓고 아무도 못 만지게 하고 있다. 절약을 해 보겠다고 나만이 알 수 있는 곳에 숨겨놓았는데 방학이 되자 아이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계모야? 콩쥐팥쥐 계모도 이런 날씨엔 빵빵하게 틀어주겠다. 엄만 안 더워?”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학교에서도 여자애들이 춥다고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다녀서 더워 죽겠는데, 집에서도 내가 이렇게 더워야 돼?” 아이가 투덜거린다.


나도 할 말은 있다. 일단 에어컨을 틀지 않은 것은 아니다. 26℃로 맞춰 놓고 그 앞에 선풍기도 세게 틀어 놓았다. 선풍기랑 에어컨을 같이 틀어 놓으면 집안이 빨리 시원해지고 전기도 절약된다. 전기세가 훌쩍 올랐다는 뉴스가 있어서 틀어달라는 대로 틀어주면 다음 달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지 겁이 난다. 또 에어컨을 너무 낮은 온도로 설정해 놓으면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져 아이도 나도 콧물을 훌쩍이게 된다. 무엇보다 난 이 온도가 쾌적한데 저 녀석은 돈 귀한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분하기도 하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여성은 24도 남성은 21도에 가까운 온도를 원한다고 한다. 한여름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틀었을 때 남자는 덥다고 하고 여자는 춥다고 하는 일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근육량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근육은 체열의 40% 정도를 생산하기 때문에 근육이 많으면 많을수록 체온이 높아지게 되는데, 체질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체온이 높아져서 더위를 많이 탄다고 한다. 아하! 그래서 저 녀석이 여름이 되면서 갑자기 투덜이에 반항아가 됐구나!


좋아! 이제부터 온도의 지배자인 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우선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몇 장 꺼내 와서 끝을 잘라냈다. 한 장 한 장 박스테이프로 이어 붙여 기다란 비닐 통로를 만들었다. 한끝을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에 꼼꼼하게 붙이고 비닐 다른 쪽 끝을 선풍기 뒤통수에 붙였다. 길게 이어진 비닐 통로가 꼬이지 않도록 신경 쓰며 선풍기를 아이의 방문 앞으로 옮기고 난 후 에어컨과 선풍기를 트니 아이의 방까지 직통으로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바람통로가 만들어졌다. 책상에 앉아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던 아이가 놀라 거실로 뛰어나왔다. 바람통로 설치한 것을 보고 아이가 배를 잡고 웃는다. “오호! 역시 온도의 지배자!” 하며 내게 큰 절을 하다가 “아유, 더워!”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 바람통로 앞에 서서 시원하다고 즐거워한다. “밤에는 끌 거야. 콧물 훌쩍거리면 안 되니까, 알았지?”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엄지 척을 하더니 다시 책상에 앉아 인강으로 눈을 돌린다.


정말 더웠나 보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아이와 나, 서로에게 알맞은 온도 상태에서 지내게 되어 너무나도 쾌적하다. 역시 나는 온도의 지배자인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피렌체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