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매일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와 남편을 깨워 아침밥을 먹인다. 둘을 보내 놓고 빨래를 돌리며 설거지를 하고 나면 청소기가 기다리고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간 것 같은 아이의 방을 정리하고 나면 이번엔 걸레질이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강아지와 산책하고 나면 그사이 다 된 빨래를 넌다. 강아지 밥을 챙긴 후 냉커피를 내려서 마시며 아까 걷어 놓은 빨래를 개고 나면 아이가 집에 온다. 그러면 간식과 저녁시간. 보통 이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열 시까진 주방문을 닫지 않으므로(우리 집에선 열 시 이후에 뭘 먹고 싶으면 각자 챙겨 먹어야 한다) 나의 근무시간은 하루 16시간인 셈이다. 물론 아이가 대일밴드 같은 것을 갑자기 찾거나 하면 열 시 이후에도 챙겨줘야 하니 16시간 이상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이의 여름방학이 꼴랑 일주일이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방학이라 하루하루가 아쉽다. 수험생이니 공부도 해야 하고 방학이니 친구도 만나 놀아야 한다. 오늘은 멀리 있는 중학교 동창들과 만나 영화 보기로 했단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하고 고등학생으로서 낼 수 있는 멋을 최대한 부리고는 용돈을 받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집이 조용해졌다. 난 갑자기 할 일을 잃은 기분이 되었다. 온몸에 날 서있던 긴장이 푸시시하며 날아가 버렸다. 에어컨을 끄고 앞뒤로 창을 열어젖히고 선풍기를 회전으로 돌리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 잠시 누워있으려고 했는데 웬 걸, 정신을 차려보니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어이쿠! 오늘 할 일을 하나도 못했네!’ 일어나려는 데 한쪽 팔이 천근 같았다. 온몸이 무거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땡땡이다! 저녁엔 아까 만들어 놓은 장조림에 밥을 비벼 버터장조림비빔밥 해주면 되겠지.’ 천천히 일어나 몸살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누워 버렸다. 오랜만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왠지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얼마만의 낮잠인지! 꿀잠을 잤다는 게, 이런 여유로운 하루를 누렸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