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동 자부심을 가진,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
한 가지를 오래 한다는 건 분명 어떤 뚝심, 자존심, 그리고 고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시작된 지 대략 30년 전후, 에르나 크누첸 여사님이 처음으로 잡지 기고문에 스페셜티 커피의 정의를 명명한 이후, SCA라는 기구로 SCAA SCAE가 통합한지는 겨우 5~6년 남짓, SCA 한국챕터가 발족되어 구성된지는 3~4년이 채 안됩니다. 그 사이 이미 오래전부터 커피를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커피풍이 있겠고 유럽의 에스프레소 물결이 있겠지요. 그러는 사이 한국 커피 1세대, 원조라고 부르는 분들이 여전히 커피 업계에서 개인의 브랜드로,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 누구한테 커피 배웠어’라는 말을요. 그게 무슨 뜻이냐면, ‘누구 학파’ 내지는 ‘누구 라인’이냐는 것이었죠. 전 그런 게 없는데. 여하튼 직접 영어 원서와 원문을 구해가며 때론 무식하게, 그리고 경험과 감각적으로 커피를 하는 제가 이단으로 보였을 수도 있죠. 그런 데다가 전자동 커피머신을 다루다 보니 더더욱 가짜 커피(?)라는 논란 속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무렵 수치, 데이터의 커피에 빠져들었고 며칠을 고민하다 해외직구로 VST TDS 측정기를 사게 됩니다. 한 90만 원쯤 들었네요. 그렇게 저는 전자동 커피머신의 추출 수율과 농도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브루잉 커피에 대해 기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별 다를 건 없습니다. 다만 각 브랜드, 추출 구조, 설정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더욱 훌륭한 커피를 추출할 수도 있고, 그런 부분을 간과해버려서 이런저런 낭비만 이루어지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바로잡고 연출하는 사람입니다.
요즘엔 그럴 일 없었는데 최근 카페쇼에서 오랜만에 이런 얘길 들었습니다.
‘전자동 커피머신은 스페셜티 커피 아니잖아요’
전자동 커피머신에 게이샤 넣고, 나인티 플러스 넣고, 사샤 세스틱의 ONA 커피, 보스턴의 조지 하웰 원두, 독일 The barn 직구해서 내려 먹으면 인정되나요? 물론 저는 다 넣어서 먹어보고 또 그러고 있어서요. 아니면 무언가 제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행위나 도구를 쓰게 되면 그건 스페셜티 커피를 하게 되는 걸로 '인정'받는 건가요. 알쏭달쏭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시네소나 슬레이어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지금도 제 바람은 포터 필터에 담긴 원두가루가 젖어드는 모양과 분포를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있으며 추출 시 가변압적인 성격으로 커피 에센스를 더 쥐어짜거나 느슨하게 유량을 제어할 수 있는 커피머신이 어서 빨리 세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제가 배운 도둑질인 전자동 커피머신을 더 널리 알리고, 또 반자동 커피머신 역시 세밀하게 다루고 있고요.
중국산 OEM 커피머신, 동구전자, 세코, 필립스, 가찌아, 프랑케, WMF, 유라, 쉐러, 라심발리(훼마), 써모플랜, 에버시스. 제가 그간 다뤄봤거나 다루고 있는 장비들이네요. 반자동도 당연히 있고요. 모두가 페라리, 포르쉐 타고 다니는 게 아니듯 저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장비를 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음이야 저도 늘 포르쉐 오너이지만요.
그래서 꼭 스페셜티라고 자부심 부릴 것도 아니고 전자동이다 반자동이다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커피를 할 테고, 할 수 있는 커피를 하니까요. 저는 그런 면에서 저렴한 전자동 커피머신을 가지고도 꽤 괜찮은 커피를 만들어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분이 이 글을 보셨으면, 너무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먹는 걸 파는 일인데요 뭘. 시간 나면 커피나 한 잔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