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 아야코의 에세이_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
고민이 생기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 하나요? 혈육보다는 친구나 아는 언니가 편하진 않으신가요? 예를 들어 4살 위에 남자 형제가 있지만 편해도 대화는 짧거든요. 우리의 전화통화는 30초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레퍼토리도 늘 비슷합니다. “어디야. 엄마가 찾아. 왜. 밖이야”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죠.
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 혹은 아는 언니와 통화는 쉽사리 끊기지 않습니다. 꼭 끊어야 하는 중대한 일, 급똥이라도 오기 전까지는요. 아, 그리고 고민이 심각해질수록 친구보다는 언니를 더 찾게 되던데, 언니들은 어떻게 항상 제가 하는 고민의 답을 알았을까요?
첫 수능 때 대학을 모조리 떨어져 방황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로한 아빠는 어떻게 대학을 다 떨어질 수 있냐고 했어요. 공부를 한 게 맞냐고요… 왜 이제 와서 관심이지?라는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리와 이가 나간 자존심에 집도 나가겠다며 난리부르스를 떨었습니다. 막상 가출하려니 돈이 없어서 그저 울면서 동네를 걸었습니다. 이때 당시 다니던 동네 교회와 큰길로 나가는 중간쯤에서 백팩을 메고 걷던 익숙한 얼굴을 만났습니다.
보자마자 더 큰 울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고 사뭇 놀라던 20대 중반의 여대생은 울지 말라는 말 대신에 제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얼굴에 수분이 가시기도 전에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 당시 한 그릇에 8,000원이던 설렁탕집이었어요.
아빠가 밉다는 저에게 너를 키워 주신 분은 분명 좋은 분일 거라고, 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따듯한 밥을 사주던 그때 여대생은 지금의 저보다 4살이나 어린데, 오늘 저보다 훨씬 어른스럽지요. 혹시 이런 언니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랜선 이모가 유행인데, 랜선 이모 대신에 활자로 만나는 큰 언니 어떠세요? 분명 이 글을 읽는 당신보다 언니(혹은 누나) 일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 로요.
베푼 친절에 비해 상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 서운하지 않으세요? 저는 몹시 그런 편인데 이 언니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친구를 초대하는 것이지 인사를 받으려고 밥상을 차리는 게 아니라”(p35)라고 심심한 조언을 말합니다. 91세의 소설가가 담담히 전해주는 조언, 궁금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흔히 30대 건강이 꺾인다고 말하는데 작가는 75세 이후의 컨디션에 대해 말해줍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윗사람이 아닐지… 나이 든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 일명 꼰대라는 말이 있죠. 연장자가 하는 조언에 대해 젊은이들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알 수 있는 신조어예요. 31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어린 사람을 만나면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을 할까 봐 긴장할 때 많아요.
침묵으로 일관하면 실수는 안 하지만 삶에 침투할 수도 없다는 것… 다들 아시지요? 아야코 언니는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대신 정확한 따듯한 진실을 들려줍니다. 조언과 잔소리, 식상함과 재미 사이에서 놀랍도록 균형을 맞춰서요. 살아온 세월을 자랑삼지 않고서도 충분히 길을 알려 줄 수 있음을 그녀를 통해 배웁니다.
때가 차야만 이해되는 말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공부할 때가 좋은 때라고 아무리 말해도 잔소리였지만 지금은 후회해요. 왜 독서실에서 공부 안 하고 로맨스 소설(일명 인소)을 읽었을까요…? 이때 독서실 아주머니가 학생, 공부해야지 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해요..
30대가 되고 교복 입은 학생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예쁘다고 나머지 하나는 공부 열심히 할걸… 나이 든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30년만 살아도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91년을 살아온 아야코 언니는 얼마나 금가루 떨어지는 말을 해주시겠어요. 넷플릭스 19금은 고민 없이 보면서 밖에서 어른이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면, 먼저 살아본 언니를 통해 어른이 뭔지, 알아보는 건 어떠세요?
무거운 책은 싫고, 인생은 재미나게 배워보고 싶다면.
소노 아야코의 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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