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공시생의 슬픔
퇴사 후 공무원 준비를 했습니다. 11월 중순부터 6월까지 약 7개월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오롯이 공부만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또, 또, 또... 하강곡선으로 치닫았습니다 아빠는 1주일째 집을 나가 있고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빨래를 하고 밥을 지었습니다. 왜 우리 집은 잊을만하면 수렁에 빠졌다. 생소하진 않습니다. 눈물로 며칠을 보내다 고시원에서 짐을 정리해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에 한번 걸렸고, 지랄병도 났어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환경의 변화보다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소싯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주인공을 조소했습니다. 유부녀와의 사랑에 목을 매고 권총까지 등장하다니..(명작이니 스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르테르에게 공감 대신 조소를 보냈지만 지금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했을 때 사람이 얼마나 으깨진 두부가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좌절되었을 때, 두 다리로 굳게 서있는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역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평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어요. 대단한 직업의식과 봉사정신?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엄청나게 하고 싶은 일지도 않았고요. 그저 최저임금에 야근수당 없는 박봉, 깨어진 워라벨, 부모님의 실망에 대한 반작용이었죠. 기왕이면 안정적이고, 성희롱에 대해 경고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전 직장은 유일한 여직원에게 회의가 심심하니 노래 불러보라는 곳이었거든요. 밥을 먹으며 옷 받아주겠다며 양 어깨를 감싸는 가벼운 추행도 있었고요. '공'자가 붙은 집단에 속한다면 조금 나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그 기대 한 스푼에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공시생 루틴은 단순합니다. 공부를 합니다. 양이 차면 질이 변한다는 말을 믿고 일단 합니다. 지식을 머리에 쏟아부었습니다. 되든 안되든 꾸역꾸역 책상에 앉았어요. 왜 저는 당연히 굴곡 없이, 오롯이 공부만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코로나에 걸리고, 엄마는 아빠랑 못살겠다고 곡소리를 내는 기간을 지나 시험을 봤습니다. 유난히 잘 본 과목은 없고 망한 과목만 남았습니다. 혹시나하고 1차 발표 당일에 사이트에 들어갔고,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었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시험은 인생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수험생이 마주하는 결과입니다. 물론 낮은 점수는 아쉽지만요. 그럼에도 다시 공시 생활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번 더 시험을 보고 불합격을 받는다면 공시 생활을 평생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고, 그 정도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직사이트마다 1페이지부터 9페이지까지 꼼꼼히 보고는 오랜만에 성적증명서를 학교에서 발급받았습니다. 바탕화면에는 2022 취업 폴더가 생겼고요. 아빠에게는 불합격했다는 말 대신 집에서 자소서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대체했습니다. 다시 일상을 보냅니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공시 불합격>이라는 명찰이 붙지는 않습니다. 노력하고 실패한 경험이 있는 한 제가 되었습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갑니다. 하루를 삽니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