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택했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는 있다.
디데이를 헤아립니다. 5개월째 공부하고 있는 이곳은 5층짜리 고시원입니다. 코너를 도는 방마다 관리실, 세탁실이 있습니다. 계단과 계단 사이에는 정수기와 전자레인지도 있지요. 오늘은 타이밍 좋게 건조기로 빨래를 돌렸습니다. 건조기를 돌리면 옷이 상한다고 하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바싹 마른빨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남은 시간을 어림잡고 빨래실로 총총 내려갑니다. 회색 바구니에 이미 빨랫감이 담겨있다. 레이스가 달린 빨간 팬티, 노란 아디다스 맨투맨까지…. 바로 제 옷입니다. 누가 다 돌려지지도 않은 남의 옷을 바구니에 넣은 걸까요? 쪽지를 남겨야 하는 걸까요? 코시국에 모르는 사람 손길이 닿았을 생각에 외마디 비명이 나옵니다. 으! 소심한데 성질은 남 못지않은 자, 구겨진 얼굴로 빨래통을 안고 올라옵니다.
고시원에 보내는 월화수목금토는 꽤나 단조롭습니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양치만 합니다. 세수는 안 할 때도 많아요. 깨닫고 나서 낮에 하면 다행이고요. 밤에는 꼭 합니다. 아무튼 공부를 합니다. 때가 되면 밥을 먹어요. 시간이 아까워서 오트밀 죽을 먹습니다. 반복되는 매일 속에서 작은 소망이 있어요. 코로나가 끝나면 고시식당에서 맘 편히 밥을 먹고 싶달까요. 포장으로 먹으면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어마어마합니다. 따끈한 음식을 담았던 용기가 비닐봉지를 꽉 채워지는 모습을 볼 때, 찜찜합니다.
단순한 일상 속에서도 달고 짜고 매운.. 그런 감정은 소나기처럼 찾아옵니다. 열품타 어플을 잠깐 멈추고 바로 침대에 누워요. 10분이 지났다는 알람이 어김없이 울린다. 쉬는 10분은 이리도 짧을까요?
성과 없는 날은 연속 재생됩니다. 신화 속 시지프스가 반복해서 돌을 올리듯 공부를 합니다. 그와 같이 수고도 제자리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왜 머릿속도 리셋될까요? 대단할 것 없는 성취와 작아 보이는 노력, 불안함을 날려 보내려 펜을 잡습니다. 100분을 위해 보내는 무수한 날, 책상에 앉아 우는 일이 익숙해진다.
이틀 전에는 졸업 후 처음으로 용돈을 받았습니다. 무려 15만 원. 엄마와 함께 집을 가 가는데 자기 보이지 않았어요. 홀로 훌쩍 걸어왔다는 걸 깨닫고 뒤돌아보니 엄마가 지갑을 열고 계셨어요. 오만 원권 3장이 손에 서 흔들렸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간 지 열흘이 훌쩍 넘은 시점에 ㅡ 그는 집이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ㅡ 엄마는 언제든 네 얘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용돈을 받았습니다.
어스름한 노란 불빛이 퍼져나갑니다. 빛 아래에서 제로콜라를 한잔 하며 생각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혼자 겪어야 할 몫이 있어서 ㅡ 흔들리고 울겠지만 그 자체로 온전한 위로가 될 수는 없다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쉬이 괴로운 나는 연약한 육신과 정신을 이끌고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을 거라는 가냘픈 위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