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꿈이 뭐야?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지 모르겠는 서른두 살의 일기

by 김제리


나는 가끔 아가들에게 인생 중대사를 묻고 싶은 충동이 커집니다. 왜냐면 그들은 때때로 나보다 더 으른 같은 말투로 놀라운 식견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언니와 조카 셋과 식당에 갔습니다. 유모차에 탄 녀석이 씩씩하게 걸어 다니기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갔을까요?


" 언니, 저는 이 나이까지 손이 가는데.. 엄마들은 진짜 대단해요"


사실입니다. 서른두 살 먹고도 손이 왜 이렇게 많이 가냐며 우리 엄마는 한탄을 하십니다. 옛날 같았으면 시집가서 애가 둘일 나이에 읍읍...


"이모. 이모도 엄마가 키워줘?"


"이모는 손이 많이가. 엄마가 아가한테 해주듯 이모네 엄마가 해준다?"


자랑은 아니죠.


"그 나이까지 해준다고?"


순간 언니와 나는 웃음이 터졌다. 저렇게 적확하게 의미를 담아, 완벽한 문장을 9살이 구사하게 되었을까요?


"응. 그래서 잘 커야 한단다."


저도 할 말이 없어 피자를 야무지게 씹고 나서야 말문이 터졌습니다.


"이모, 이모는 꿈이 뭐야?"


"꿈? 이모는 그냥... "


이모는 꿈은 없고 소박하게 살고 놀고먹고만 싶어...라고 9살에게 그렇게 대답해도 될까요? 살짝 거창하지만 진실되게 대답해야 한다는 무언의 강박이 나를 짓눌렀습니다. 사실, 지난달에도 저 질문을 받고 한참이나 고민했습니다.


"이모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회사 안 다니고 일하고 싶어."


"그럼 이모는 화가가 되면 되겠다. 그림을 잘 그리니까 화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시키는 대로 그림 그리는 편


오늘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을 봤다는 말만 들으면 당연히 정규직에 4대 보험이 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생각할 나이입니다. 내 나이 서른둘,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는 건 아빠에게 여전히 달갑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꿈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내 꿈은 해적왕이라고 당당히 말하던 루피가 부러워집니다. 꿈이 현실에 파묻힙니다. 자존심도 한몫한다.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 꿈이라고 말하기가 초라해집니다. 사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모든 사람이 특출 날 수는 없지요. 취향이 다양하기도 하고 말이에요. (물론 베스트셀러는 다 이유가 있지요)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가 아닐까요?.

황석영 선생님은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말하셨어요. (개밥바라기별, 작가의 말, 285p, 문학동네) 모두가 빌게*트, 지드*곤, 김*아 처럼 정점을 찍을 수는 없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항상 신나지 않을 거란 건 알지만요.

아무튼, 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묻힐 뿐이죠. 묻힌 꿈을 한 줌씩 파내어 꺼내볼까 싶습니다. 꿈이라 이름 붙은 큰 원석을 깎아봐야겠어요.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훌륭한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고요. 적어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고 부끄럽고 싶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 그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줄 거예요.






이전 13화함께는 버겁고 혼자서는 외로울 때 읽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