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면서도 불안한 당신에게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거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돼지고기와 컵누들로 촵촵 로제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탄산수를 나발째 마시고 후식으로는 두부 칩을 먹었습니다. 달라진 거라곤 4시간의 노동과 왕복 2시간 출퇴근길. 총 6시간뿐인데 훨씬 허기집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영양제를 탈탈 털어 넣습니다. 혈액순환을 위한 오메가 3, 소중한 머리숱을 위한 맥주효모 환...
작년 가을, 회사를 그만두고 공시생이 되었습니다. 7개월 남짓한 시간으로 누군가는 합격을 하지만 저는 떨어졌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에 눈물이 났습니다. 후회하지 말자던 결심은 시간에 씻겨집니다. 진심이 말갛게 드러납니다. 사실 붙을 때까지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럴 상황이 안되니 머리로 납득했을 뿐이었지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를 하다가 시험에 떨어져도, 실연을 당해도, 취업이 안돼도 삶은 이어집니다. 결과가 합격이 아닌데도 끌어 쓴 젊음은 이자가 붙습니다. 같은 목표로 시간과 돈, 젊음을 때려 넣는데 아웃풋은 다릅니다. 경쟁률이 1:6이라는 건 5명은 불합격이라는 뜻이었어요. 합격하지 않은 5명도 삶이 이어집니다. 누구나 1명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요.
시험을 본 직후에 알았습니다. 직감. 떨어졌구나. 가채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준비하는 동안 돈도 꽤 썼고 후반부에는 체력도 후달렸습니다. 힘이 없어서 누워서 공부를 했습니다. 체력과 통장 잔액은 퇴사 시기에 샀던 주식처럼… 파란선으로 하강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고 추슬러야 하는 기간만큼 뒤쳐진 기분이 들었어요. 빨리 괜찮아지고 싶은 마음에 시험이 끝난 뒤에는 공부하며 썼던 투두 리스트를 채워나갔습니다. 못 봤던 영화,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여행도 다녔습니다. 모든 투두 리스트가 채워질 때쯤 찾아온 건 후련함이 아니고 이석증이었습니다.
3시간 자고 강릉으로 당일치기 서핑을 다녀왔던 며칠 뒤, 일어나자마자 화면이 360도로 뱅뱅 돌았습니다. 누우면 어지러움증이 심해져 하루 종일 멀미를 하며 앉아있었어요. 바른 자세로 버티다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누우면 어지러움증이 도집니다. 증세가 나아지질 않아 5주 동안 2-3일에 한번 꼴로 병원을 갔습니다. 3주 차부터는 신경과 대신 이비인후과를 갔어요. 이석증은 낫는 병이니 큰 걱정 말라는 따듯한 말 한마디, 그 말부터 조금씩 호전되었습니다.
동사무소에 갔는데 내 직장이 되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수기 옆에 놓은 칫솔치약세트가 기괴하다고 느꼈어요. 그렇죠. 공시에 불합격하면 공무원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그런 자신이 싫지 않다면 실패는 경험으로 다른 길을 열어줍니다. 특정한 일이 하고 싶어 진다면 오답노트를 만든 셈이고요.
이를테면 붙을 때는 감사했다가 욕하며 퇴사한 회사가 나중에 잡플래닛 1점으로 평가된다는 걸 알게 되면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나은 곳으로 가면 된다는 다짐으로 이어집니다. 다정하게 속살거리며 같이 있으면 즐겁다고 말하던 남자가 사실 다른 부서 여직원과 비밀로 사내연애 중인걸 알게 되면 분하지만 결국은 다정함에 얼마나 약한지 체득하는 것처럼요.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건 대단한 실패도, 모험도 아닙니다. 언제나 그랬듯 수많은 성취와 실패는 삶의 일부입니다. 결론이 거창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대단한 깨달음이 없어도 발화되는 삶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 마침내 재건되니까요.